‘진짜 사나이’ 백기완 선생 별세

입력 : 2021.02.15 14:15 수정 : 2021.02.15 14:17

한국 ‘진보의 상징’ 백기완 선생이 15일 별세했다. 향년 88세.

서울대병원 등에 따르면 백 선생은 지난해 1월 폐렴 증상으로 입원해 투병해 왔다.

1993년 자신의 모습이 그려진 대형 걸개그림 앞에서 연설 중인 백기완 선생. 경향신문 자료사진

1993년 자신의 모습이 그려진 대형 걸개그림 앞에서 연설 중인 백기완 선생. 경향신문 자료사진

1933년 황해도 은율에서 태어난 백 선생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은 백범 김구 선생이다. 그의 조부가 피신하던 백범을 돌보았고, 이후 백 선생은 백범의 영향을 받았고 스승처럼 따랐다.

1950년 6·25가 발발하면서 부모·작은형과 함께 남쪽으로 내려온 선생은 이 후 젊은날 농민운동과 나무심기운동, 빈민운동에 힘썼고 1967년 고 장준하 선생과 함께 ‘백범사상연구소’를 세웠다. 이 연구소는 이후 ‘통일문제연구소’로 확대됐다.

1973년에는 유신헌법 철폐를 위한 개헌 청원 100만인 서명운동에 앞장섰고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서울지부 의장, 전노협 고문 등을 지내오다, 박정희 정권 시절 대통령 긴급조치 위반 혐의로 1974년 3월 비상고등군법회의에서 징역 12년·자격정지 12년을 선고받았다. 이 후 2013년 8월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1987년 대선에 민중후보로 출마했던 백 선생은 야당의 후보 단일화·연립정부 구성을 촉구하며 사퇴했고, 1992년 다시 민중후보로서 대선에 출마해 24만표를 얻었다.

2002년 월드컵이 끝난 직후인 7월, 출국하는 히딩크 감독과 만난 백기완 선생.

2002년 월드컵이 끝난 직후인 7월, 출국하는 히딩크 감독과 만난 백기완 선생.

15일 오전 빈소가 마련된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고인의 영정이 놓여있다. 연합뉴스

15일 오전 빈소가 마련된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고인의 영정이 놓여있다. 연합뉴스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의 가사 원작자이기도 한 백 선생은 ‘항일민족론’(1971), ‘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2009) 등 여러 저작도 남겼다. 당시 선생은 “사람은 누구나 사람답게 살고자 한다”며 “그냥 태어났으니까 살라고 하면 안된다”고 말했다.

평소 축구를 좋아했던 선생은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당시 히딩크 감독의 요청을 받아 대표팀 선수들에게 강연을 하기도 했다. 이후 선생은 히딩크 감독과 각별한 인연을 이어왔으며, 히딩크 감독은 “진짜 사나이·진짜 한국사람”이라며 존경을 표현하기도 했다.

백 선생의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2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19일 오전 7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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