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말, 하버드대 교수이자 의학 박사였던 니콜라스 크리스타키스(Nicholas Christakis)는 부부 중 한 사람이 큰 병을 얻게 되면, 배우자의 건강도 위태로워지는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미망인 효과’라고 하지요. 관련 연구를 하다가, 갑자기 궁금해집니다. 부부 관계가 서로의 건강에 이토록 큰 영향을 끼친다면, 친구 관계도 건강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분명히 영향을 주고받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네트워크 연구를 하던 캘리포니아주립대 교수 제임스 파울러(James Fowler)와 함께 연구를 시작합니다.
1948년부터 매사추세츠주 프레이밍햄(Framingham)이라는 도시에서 5000명이 넘는 주민들을 대상으로 정기적인 신체검사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프라이밍햄 심장연구’라는 거대한 프로젝트였어요. 심장질환에 대해 연구하기 위해서 본인의 인터뷰와 가족, 친구 관계에 대한 인터뷰까지 엄청난 데이터가 구축되어 있었습니다.
니콜라스 박사는 어느 날, 방대한 데이터를 살펴보던 중에 ‘비만이 가족과 친한 친구에게 전염된다’는 재미있고도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니콜라스 박사의 연구 결과는 2007년 ‘뉴잉글랜드 의학 저널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에 게재됩니다.
- 친구가 비만해질 경우 2~4년간 체중이 늘어날 가능성은 45%가량 높아진다.
- 친구의 친구가 비만해질 경우 체중이 늘어날 가능성은 20%가량 높아진다.
- 친구의 친구의 친구가 비만해질 경우 체중이 늘어날 가능성은 10%가량 높아진다.
내 친구의 친구는 이름은 알아도 얼굴은 모를 수가 있고, 내 친구의 친구의 친구는 이름조차 모르는 사람일 수도 있지요. 그런데도 내가 살찌는 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
이 효과를 연구자들은 ‘영향의 3단계’라고 불렀습니다. 내 친구가 A, 친구의 친구가 B, 친구의 친구의 친구를 C라고 합시다. C가 비만이면 B가 가지고 있는 표준(비만)에 대한 인식에 영향을 미쳐서 ‘C에 비하면 나는 뚱뚱한 편이 아니야’ 또는 ‘C에 비하면 나는 날씬해’와 같은 생각을 가지게 될 수 있지요. B가 가진 표준에 대한 인식은 A에게도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나는 내 친구인 A에게 영향을 받게 되고요.
결국 내 친구가 비만이거나, 친구의 친구가 비만인 경우, 비만에 대한 표준 인식이 바뀌어서, 식습관과 같은 내 행동도 바뀌더라는 것입니다. 매일 함께 다니는 그 친구도 제 영향을 받아서 같이 체중이 줄었고요. 자주 만나는 친구일수록 식습관도 닮아가고, 만날 때마다 같은 음식을 서로 비슷한 양으로 먹게 되잖아요. 비만도 친구의 영향을 받고, 친구의 친구의 친구와 같이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까지 미묘하게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논문을 읽고 격하게 공감했습니다. 제가 요즘 자주 만나는 친구들이 몸매가 후덕합니다. 2주에 한 번 만나서 실컷 먹고 수다를 떠는 친구들인데요, 4명이 60㎏ 이상이고, 저만 50㎏ 초반대를 잘 유지하고 있었어요. 6개월이 지난 지금. 제 몸무게는 생애 최대의 몸무게를 찍고 또 찍고, 경신해가는 중입니다. 이유는 이 친구들이 제게 ‘너는 말랐어. 더 먹어. 좀 더 쪄도 된다. 하나도 안 쪘다. 더 먹어라. 더 먹자!’ 말할 때마다 그 말을 믿고 잘 따른 결과였습니다. 걔들 속에 있을 때 저는 가장 마른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 말을 믿는 건 너무 쉬운 일이었고, 안심하고 마구 먹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지요. ‘비만에 대한 표준 인식’이 바뀐 탓이었습니다.
지금 이 글을 읽으면서 뚱뚱한 내 친구들을 원망하고, 나의 뱃살 증가의 원인을 그들 탓으로 돌리고 싶은 욕구가 팽창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나 또한 그들에게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걸 알면, 상황은 역전될지도 모릅니다.
■‘마음치유 안내자’ 박상미는?
공감, 소통, 치유, 회복을 주제로 글쓰고, 강의하고, 다큐를 찍는다. 교도소와 소년원에서는 ‘마음치유학교’를 연다. ‘관계에도 연습이 필요합니다’,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마음아, 넌 누구니’, ‘나를 믿어주는 한 사람의 힘’, ‘마지막에는 사랑이 온다’, ‘나를 믿어야 꿈을 이룬다-박상미의 고민사전’ 등을 썼다. 유튜브 ‘박상미라디오’ ,EBS 라디오 ‘박상미의 마음 마음’ 진행자이며,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강연자다. EBS ‘인생 파란만장’, SBS ‘언니한텐 말해도 돼’에 출연중이다.찍은 다큐 영화는 ‘내 인생 책 한 권을 낳았네’, ‘마더 마이 마더’ 등이 있다. 더공감 마음학교 소장, 한국의미치료학회 부회장·수련감독이며 경찰대학에서 강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