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김민우가 지난 14일 고척 키움전에서 6이닝 무실점 피칭 뒤 경기 내용을 복기하고 있다. 한화 이글스 유튜브 캡처
그때는 몰랐다. 그때의 선택이 그만한 큰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것을. 지난 겨울, 한화 우완 김민우(26)는 호세 로사도 투수코치로부터 구종 변화에 관한 제안 하나를 받았다.
김민우는 패스트볼과 포크볼, 슬라이더, 커브 등 총 4가지 구종을 던진다. 그 중 슬라이더의 궤적을 바꿔보자는 게 로사도 코치 제안의 핵심이었다.
로사도 코치는 전력분석팀에서 지난 시즌을 보낸 이동걸 불펜코치와 김민우의 구종별 궤적을 하나씩 뜯어본 끝에 “옆으로 변하는 구종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뽑아냈다.
김민우는 구종 개수 만큼 구종별 궤적은 다양하지 못했다. 특히 리그 선발투수 중 구사율이 가장 높은 포크볼의 궤적이 슬라이더와 비슷하게 형성됐다. 시속 130㎞ 초반대 구속에 종으로 움직이는 궤적까지 닮아있다 보니 비슷한 타이밍에 방망이를 내는 타자들의 스윙에 걸리는 경우가 잦았다.
김민우는 ‘트래킹 데이터’를 통해 나온 구체적인 처방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마음을 열었다.
구종 배합에도 ‘디자인’이 있다. 요즘은 ‘피칭 디자인’으로 흔히 표현한다. 패션을 얘기하자면 남성 정장은 넥타이 하나, 여성 정장은 스카프 하나로 옷입기에 완성도를 높이는 것처럼 하나의 구종 변화로 전체적인 분위기를 바꿀 수 있다.
김민우는 겨우내 슬라이더 궤적을 바꿔갔다. 종의 움직임을 줄이고 횡의 움직임을 늘렸다. 전에 없던 옆으로 흘러나가는 변화구 하나가 생겼다.
트래킹 데이터에 따르면 김민우의 슬라이더는 약 8~9㎝ 횡의 변화를 이룬다. 지난해보다 4.3㎝ 늘어난 수치다. 반대로 슬라이더 낙폭은 절반 아래로 줄었다. 전체 구종 중 올시즌 슬라이더 구사율은 11%. 2%만 쓰던 지난해보다 9% 늘어난 가운데 올해 김민우를 만나는 타자들은 옆으로 흐르는 변화구까지 머릿 속에 넣을 수밖에 없게 됐다.
한화 김민우가 지난 21일 대전 KT전에서 로진 백을 들어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지금까지 결과는 놀랍다. 특히 우타자를 만나서는 ‘특효약’이 되고 있다. 올시즌 우타자를 상대하며 잡아낸 삼진 24개 가운데 38%(9개)를 슬라이더를 결정구로 낚아냈다.
김민우는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의 믿음 속에 개막 선발로 시즌을 맞았다. 그리고 9경기에서 5승2패 평균자책 3.83으로 기대에 응답하고 있다.
사실, 투구 구종이 바꾸자고 해서 바꿔지는 건 아니다. 김민우의 경우도 당사자인 투수가 노력하고 행동으로 옮겼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난 14일 고척 키움전에서는 그날 선발 김민우가 더그아웃에서 틈을 내 ‘열공’ 하는 장면이 목격됐다. 그날 6이닝 동안 5피안타 무실점에 삼진 9개를 낚아낸 김민우는 마운드에서 내려온 뒤 흰 종이 하나를 벽에 대고 뭔가를 한참 적었고, 이 장면은 한화 이글스 공식 유튜브로도 소개됐다.
김민우는 “타자 별로 어떤 패턴으로 승부했는지, 결정구로는 어떤 공을 썼고, 결과가 어땠는지 메모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민우는 “구체적인 내용은 ‘영업비밀’이다”며 추가 언급은 아꼈지만, 타자별로 던진 코스와 구종들이 빼곡히 담겨있다는 게 구단 관계자의 설명이다.
김민우는 욕심 없는 투수였다. 속마음을 다 알 수는 없지만, 누가 보더라도 착하고 욕심 없어 보이는 선수였다. 지난해 본지에서 코로나19 여파에 따른 야구장 인근 상권의 아픔을 취재하던 중 대전구장 앞 중화요리점 사장이 “민우는 덩치는 큰데 너무 착해. 반찬이 모자라면 더 달라는 이야기도 잘 못하는 아이”라고 한 얘기는 김민우를 아는 사람 모두를 고개 끄덕이게 했다.
김민우는 지난해 12월 결혼을 했다. 결혼의 책임감 때문인지, 선수로서 비로소 눈을 뜬 것인지 그 이유는 정확히 알 길은 없다. 다만 확실한 건 올해의 김민우는 다르다는 것이다. 마운드에서 ‘욕심쟁이’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