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환이 오승환을 꿈꿨다면

입력 : 2021.06.21 19:03 수정 : 2021.06.21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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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오지환이 공을 잡아 송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LG 오지환이 공을 잡아 송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2008년 말 LG의 마무리캠프가 끝난 뒤 신인선수 한명을 놓고 구단 내부에서 ‘격론’이 벌어졌다.

LG가 차세대 주전 유격수로 점찍고 2009년 신인드래프트 1차 지명으로 영입한 오지환을 두고 당시 사령탑 김재박 감독과 정진호 수석코치가 회의적인 시각을 보인 것이 논쟁의 불씨가 됐다.

김재박 감독은 1900년대초 필립 질레트 선교사가 이 땅에 야구를 전파한 뒤 나온 대한민국 역대 최고 유격수였다. 정진호 수석코치 또한 앞서 김 감독과 함께 현대 유니콘스의 황금기를 이끈 수비 전문으로 이 두 지도자의 목소리에 무게가 실리지 않을 수 없었다.

구단에서는 현장 입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리그 유격수 계보를 잇는 류지현 은퇴 뒤 일종의 과도기에 권용관으로 바통을 잇게 한 뒤 간판 유격수를 만들기 위해 과감히 1차 지명 카드를 써 잡아낸 신인이 바로 오지환이었기 때문이다.

팽팽하던 틈을, 당시 일본인 다카하시 미치다케 투수코치와 함께 투수진을 맡고 있던 차명석 불펜코치가 파고 들었다. 당시 차 코치는 “어깨가 정말 좋으니 투수시키면 잘 만들 자신 있다”며 오지환을 투수로 키우자고 주장했다. 실제 오지환은 경기고 시절 140㎞ 중반대의 빠른공을 던져 투수로도 가능성을 보인 상태였다.

오지환의 ‘인생극장’은 그때가 시작이었다.

당시 오지환을 투수로 키우고 싶어했던 차명석 LG 단장은 그때를 돌이키며 지난 주말에도 같은 얘기를 했다. 듣는 입장에선 특유의 코믹 코드를 강하게 가미한 듯한 느낌을 지우기 어렵지만 “나를 따라 투수를 했으면 오승환 같은 마무리로 만들었을 것이다. 투수를 했다면 지금쯤 외국 한번 나갔다 왔을 것”이라며 호쾌하게 웃었다. 우스갯소리처럼 얘기했지만, 그때의 마음은 진심이었다고 재차 강조도 했다.

사실, 그 때의 LG는 붙박이 마무리 공백 상태이기도 했다. 투수 스태프에서 당시 ‘끝판대장’으로 리그를 평정하던 삼성의 오승환 같은 자원 찾기에 목말랐던 시점이었다. 실제 LG는 2010년에는 외국인투수로 일본인 마무리 오카모토 신야를 영입하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투수 스태프의 목소리가 그저 소수 의견으로 남으며 접어든 2009년 오지환의 프로 첫 시즌. 오지환은 유격수로 출발했지만, 1군에서는 5경기에 출전한 것이 전부였다.

이후로 코칭스태프의 변화가 없었다면, 오지환은 진짜 그 즈음 투수 전향을 전격 선언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사령탑이 박종훈 감독으로 바뀌고, 프런트로 있던 염경엽 운영팀장이 수비코치로 자리 이동하면서 오지환의 운명은 굳히기에 들어간다. ‘유격수 프로젝트’는 그제서야 본격 가동된다.

운영팀장으로 구단의 계획을 공유했던 염경엽 코치의 생각이 현장 속에서 적극 반영되며 오지환은 2010년 유격수로 125경기에나 출전했다. 물론 어떤 면에서는 악몽 같은 한해였다. 그해 실책은 무려 27개로 압도적 리그 1위. 오지환이 리그 야수 중 ‘욕’을 가장 많이 먹던 때다. 또 그 이미지가 너무도 강하게 남아서인지 오지환은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대표 선발 때까지도 자격 논란으로 비난을 받았다.

오지환은 지난 16일 유격수란 타이틀을 달고, 비로소 활짝 웃을 수 있었다. 다음달 열리는 도쿄올림픽 야구대표팀에 승선하며 김경문 감독으로부터 “가장 수비 잘 하는 유격수”라는 평가를 받았다. 사실, ‘수비 잘 한다’는 평가가 나온 것은 벌써 한참 전이지만, 과거의 시각 때문인지 합당한 칭찬은 한번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 발탁으로 오지환은 일종의 국가대표 ‘공인 유격수’가 됐다.

오지환은 공교롭게도 본인의 인생여정에 깊게 간여했던 단장(차명석), 감독(류지현)과 지금 함께 하고 있다. 유격수로 출발을 시킨 건 염경엽 당시 코치였지만, ‘유격수 오지환’을 완성시킨 건 2012년 주루코치에서 수비코치로 자리 이동한 지금의 류지현 감독이었다.

류 감독은 강했지만 투박했던 오지환의 수비에 변화를 주기 위해 기본적으로 급한 성격에서 걷는 속도까지 생활 습관 하나 하나를 바꿨다고 했다. 이 대목에서 “선수 쉽게 판단하면 안되는 것을 다시 느꼈다”는 류 감독의 말은 참 울림이 크다. 도전하는 누군가, 또 그를 가르치는 누군가와 꼭 함께 하고 싶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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