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빈이와 경민이 그리고 건우…두산의 ‘세 친구’

입력 : 2021.07.06 06:26 수정 : 2021.07.06 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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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가을 잠실구장에서 경기를 준비중인 정수빈과 허경민, 박건우(왼쪽부터). 이석우 기자

2019년 가을 잠실구장에서 경기를 준비중인 정수빈과 허경민, 박건우(왼쪽부터). 이석우 기자

한화는 4년 총액 40억원을 제시했다. 장점이라면 40억원이 모두 보장된다는 점이었다. 빈약한 선수 구성을 감안하면 본인의 영역이 굉장히 넓을 것이란 예측이 가능했다. 단점은 역시 일터와 집을 모두 옮겨야 하는 번거로움과 부담이었다.

두산은 6년 총액 56억원의 조건을 내걸었다. 장점이라면 역시 익숙한 곳에서 계속 뛸 수 있다는 점이었다. 총액 중 4억원을 성적에 따라 받지 못할 수 있는 조항은 단점이었다.

지난겨울, 자유계약선수(FA) 시장에 나온 정수빈이 친정 두산에 잔류한 것이 통념을 벗어난 결정은 아니었다. 1년 평균 보장액 등을 감안하면 한화 쪽으로 고개를 돌려볼 만했지만, 모험을 감행할 만큼 조건 차이가 큰 것은 또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전해진 당시의 협상 과정에 관한 얘기는 이례적이었다. 한화는 4년 40억원을 보장해놓은 이상, 반드시 잡아야겠다는 판단이 선다면 ‘플러스 옵션’이라도 만들어 선수 설득에 나설 수 있었지만 더 나가지 못한 정서적 배경 하나가 있었다고 한다.

당시 한화와 정수빈 측의 협상은 비즈니스적 틀에서 벗어나 허심탄회한 대화 분위기로 진행됐다고 한다. 한화 협상의 키를 쥐고 있던 정민철 단장이 선수 출신 선배인 것도 작용한 것으로 짐작 가능하다. 그런데 정수빈은 두 번째 만남에서도 구체적인 요구 조건을 내놓지 않았다고 한다.

한화에서는 만나면 만날수록 정수빈 영입이 어려울 것을 예감했다.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정수빈의 잔류 의지였다. 그에 대한 관계자의 얘기 한 토막. “두산에 잔류하려는 생각, 또 그 무엇보다 동기들(박건우·허경민)과 연대감이 강해 더 나가지 못한 협상이었다. (친구들과) 계속 함께 하고 싶어 하는 생각이 앞서 있어 조건이 앞에 가기 어려웠던 것으로 알고 있다.”

정수빈과 박건우, 허경민은 1990년생 동갑내기로 고교 졸업반이던 2008년 캐나다 에드먼턴에서 열린 제23회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대표팀에 합류해 미국을 꺾고 정상에 오르는 영광을 나눴다. 대회 2주 뒤 열린 프로야구 신인 2차지명에서 세 명은 나란히 두산의 선택을 받았고, 그 뒤로 그냥 친구에서 ‘절친’이 됐다.

프로야구 선수라면 아무리 친해도 ‘우정은 우정이고, 야구는 야구’이기 마련이지만, 정수빈에게 이들 두 친구는 달랐던 모양이다.

사실, 정수빈은 FA 계약과 함께 꿈꿨던 미래를 만나지 못했다. 스스로 부상 부진으로 2군을 들락거리면서 벤치에 앉는 경우도 많은, 낯선 시간을 보냈다. 역시 FA 계약을 한 허경민이 주전 3루수로 자리를 지켰지만, 박건우는 최근 ‘태도 논란’에 휩싸이며 2군에 다녀오기도 했다.

정수빈의 바람대로 세 명이 같은 유니폼을 계속 입는 데는 성공했지만, 이전처럼 세 명이 함께 그라운드를 누비는 시간은 바로 만들지는 못했다. 이들은 어쩌면 2015년 김태형 감독 부임 이후 야수진의 간판으로 자리잡은 뒤로 팀과 함께 가장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프로야구는 비즈니스다. 선수라면 그라운드에서의 몸짓 하나 하나가 기록으로 정리되고, 또 돈으로 환산된다.

그러나 프로야구의 스토리는 비즈니스의 범주에만 머물지 않는다. 정수빈이 그랬듯 오히려 계약 관계를 뛰어넘은 곳에서 눈을 끄는 이야기가 나올 때가 많다.

박건우의 2군행 역시 선수 권리가 상당 부분 보장되는 메이저리그식 접근법으로 비판의 여지가 따를 수밖에 없었다. 과거 같으면 감독의 ‘기강 잡기’ 등으로 해석되고 그만일 수 있었겠지만, 이미 우리 리그도 비즈니스적 공기가 깊이 스며든 것을 입증하듯 평가는 천차만별이었다.

사실 한편으로 더욱 눈에 들어온 것은, 일련의 과정에 대한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보다는 선수를 향한 감독의 어떤 행동과 결정이 논란이 되고 그게 또 화제가 됐다는 점이었다. 실로 오랜만의 일이었다. 김태형 두산 감독은 지난 주말 “요즘은 선배가 후배에게 얘기하기가 쉽지 않고, 코치들은 선수를 다독이는 역할을 해야 해 내가 악역을 맡았다”고 했다.

정수빈이 두산 잔류 시 친구를 먼저 찾았듯 가끔은 지금의 통념과는 다른 리더십도 나왔으면 좋겠다. 누가 봐도 똑같은 일에는 평가조차 없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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