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 뒤 기뻐하는 LG 선수들. 정지윤 선임기자
프로야구 올드팬들에게 투수 이선희는 눈물로 기억된다.
1982년 프로야구 원년 개막전, 삼성 이선희는 연장 10회 MBC 청룡 이종도에게 끝내기 만루홈런을 맞았다. 또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9회 OB 베어스 김유동에 다시 만루홈런으로 결정타를 맞았다. 불펜에 주저앉아 눈물을 흘리는 이선희의 모습은 프로야구 역사의 잔상이 됐다.
어느 구단이든 아픈 잔상이 있다.
그 중 LG는 1995년 롯데와 플레이오프와 2002년 삼성과 한국시리즈를 잊기 어렵다. 95년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는 3점을 앞서던 7회 1사 만루에서 3루수 송구홍의 홈송구가 3루주자 김민재의 등으로 향해 경기 흐름과 시리즈 판도가 바뀌었고, 2002년 한국시리즈 6차전에선 9회말 9-6에서 이상훈이 이승엽에게 3점홈런을 맞고 최원호가 마해영에게 끝내기 홈런을 허용하는 ‘새드 엔딩’을 남겼다.
LG는 올해도 생각하자면 잔상 많은 시즌을 보냈다. 두산과 준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1-1이던 3회 임찬규가 페르난데스에게 투런홈런을 맞는 장면, 후반기 승부처에서 마무리 고우석이 결정적 한방으로 이길 수 있는 경기를 비기거나 비길 수 있는 경기를 내주는 장면 등이 여러 사람의 기억 속으로 스며들었다.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가 끝나고 며칠 뒤,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 한 구단의 관계자는 “올시즌 성적을 못낸 구단이 참 많은데, 지금 와서는 마치 LG가 가장 아픈 구단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LG로서는 무척 억울할 수 있는 얘기다. 정규시즌을 3위로 마치기는 했지만, 최종일 마지막 순간까지 선두싸움을 한 시즌의 평가로는 여러 모로 가혹하기 때문이다.
아픈 잔상은, 기회의 다른 이름이다. 올해 LG의 잔상도 기회에서 비롯됐다. 정규시즌 우승팀과 최종 간격이 고작 1.5게임차에 불과했기에 돌아보자면 ‘그 경기만 잡았다면…’이라는 단서가 달리는 목소리가 안팎에서 너무 많았다. LG는 그 목소리를 흘려듣지 않았다. 지난 27일 코칭스태프의 회의에서 1.5경기의 틈을 만든 아픈 잔상을 다시 끄집어내며 내년을 기약했다.
아픈 잔상은 ‘반면교사’로 기억하면 약이 된다. 그러나 너무 깊이 빠져있는 건 절대 유익하지 않다. 오랫 동안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되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LG는 1.5경기까지 좁힐 수 있었던 계기가 된 경기의 잔상도 함께 갖고갈 필요가 있다. LG는 아쉽게 놓친 경기가 적지 않았던 만큼 어렵게 잡은 경기도 어느 해보다 많은 시즌이었다. 4월4일 개막전에서 ‘디펜딩 챔피언’이던 NC를 2-1로 이긴 것을 시작으로 올시즌 1점차 승부에서 승률 6할(18승12패)로 전체 2위였다. 평균자책 1위(3.57)에 수비 효율(DER) 또한 0.701로 전체 1위로 수비로 실점을 최소화하는 촘촘한 야구를 했다. 외국인타자의 공백 상황에 팀타율과 팀OPS가 8위까지 내려앉는 공격력 부재 속에 막판 선두 싸움을 한 팀은 리그 역사에서도 흔치 않다. LG에는 자신감이 될 잔상이다.
2021시즌의 LG를 기억하는 방법은 각자의 자유다. 그러나 해당 선수는 물론, 구단과 현장 운영에 밀접한 관계자일수록 좋은 기억과 나쁜 기억을 잘 가려 적절히 기억하는 것도 실력이다.
단 하나, 짚고 넘어갈 건 있다. 시즌 개막 전까지도 거론되지 않던 ‘윈 나우’의 허상이 한 두번의 트레이드로 지나치게 부각된 과정이다. 팀성적의 평가 기준마저 이상하게 부풀려지면서 선수들은 세리머니까지 바꿀 만큼 부담을 느꼈다. 우승이 목표라도 우승을 하겠다고 스스로 선언하며 시즌을 보내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일이다. LG가 꼭 기억해야할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