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G 김광현. 연합뉴스
프로야구 롯데가 지난 겨울 사직 홈구장을 ‘공사판’으로 만든 것은, 공간이 의식을 지배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롯데는 지난 3시즌간 투수 친화형 대표구장인 잠실에서는 48경기를 치르며 평균자책 3.93으로 준수한 기록을 남겼지만, 타자친화형 구장만 가면 투수 지표가 급추락했다. 같은 기간 홈구장 사직에서 평균자책 5.06을 기록했을 뿐 아니라 인천의 문학구장에서도 평균자책 5.18로 고전했다.
투수는 눈앞 타자를 먼저 의식하며 공을 던지지만, 때로는 등 뒤의 펜스를 강하게 의식한다. 성민규 롯데 단장은 투수들로 하여감 등 뒤의 부담을 덜어주기로 했다. 젊은 투수들의 성장세에 맞춰 구장 사이즈를 확대한 이유였다.
SSG 김광현과 구장 사이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것은 지난 19일이었다. 두산과의 주중 잠실 3연전 마지막 날로 김광현은 이튿날 문학 홈경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좌우 95m에 중앙 120m 거리의 문학은 투수들이 가장 꺼리는 구장으로 1,2위를 다투는 곳이다. 김광현은 KBO리그 역대 투수 가운데 그곳 문학구장에서 가장 많은 이닝을 던진 투수다. 2007년 데뷔 뒤 문학에서만 145경기에 등판해 844.1이닝을 던지고 있다.
김광현으로서는 조금 억울할 수도 있었다. 투수 통산 성적을 들여다보며 홈구장의 불리함까지 세심히 감안해주는 시선이 많지는 않기 때문이다. 인천 프랜차이즈 구단에 입단하고 이듬해 그곳의 간판투수가 된 김광현에게는 그래서 문학구장은 이미 운명 같은 장소일 수 있다.
어쩌면 낯 익은 질문이었을지 모른다. 김광현은 태연한듯 웃으며 대답했다.
“다른 팀 투수들은 다른 곳에서 던지다가 문학에 오면 아마도 야구장이 작아 보일테죠. 그런데 전 반대예요. 문학구장이 늘 던지는 곳이잖아요. 이미 익숙해요. 오히려 문학에 있다가 다른 곳에 가면 구장이 커보이는 느낌이에요.”
어쩌면 ‘환경 적응론’ 같은 무엇일 수 있었다.
김광현은 사실 말보다는 결과로 문학구장 적응법을 설명하고 있다. 미국프로야구 세인트루이스에서 뛴 2년을 제외하고 KBO리그에서 13시즌째. 김광현은 통산 평균자책 3.21을 기록한 가운데 문학구장에서는 3.02로 오히려 더 좋았다. 통산 피OPS도 0.684를 기록하면서 문학구장에서는 0.682로 미세하나마 나은 결과를 냈다. 또 통산 142승 가운데 절반이 넘는 73승을 문학구장에서 거두고 있다.
김광현은 지난 20일 문학 LG전에서 1회 오지환에게 왼쪽 폴 안쪽으로 살짝 넘어가는 선제 3점홈런을 맞았다. 비거리 102.2m로 잠실 경기였다면 펜스에 맞고 떨어지거나 좌익수에게 잡힐 수 있는 타구였다. 김광현은 1회의 부진과 불운에 발목이 잡히지 않았다. 1회 분위기로는 금세라도 무너질 것 같던 김광현의 이날 성적은 7이닝 7안타 4실점. 1회 이후 추가 1실점만 하면서 6이닝을 더 버텼다. SSG는 경기 중반 중심을 잡은 에이스의 역투를 발판으로 9회 역전승으로 경기를 마무리했다.
KBO리그에서 가장 작은 구장을 지키는 에이스의 여유일까, 혹은 품격일까. 김광현은 피칭으로 말한다.
투수 의식을 지배하는 것이 공간이 아닐 수 있다고. 결국에는 생각과 기술의 차이가 의식 차이를 만드는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