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진 SSG 랜더스 구단주. 연합뉴스
지난 11월8일 늦은 밤이었다. 프로야구 SSG의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인천 문학구장의 밤하늘은 환해졌다. 공식 세리머리가 이어졌다. 더그아웃 안팎과 클럽하우스에서는 비공식 세리머니가 이어졌다.
경기가 끝나고 1시간 30분은 족히 흐른 이후였다. 정용진 구단주가 1루쪽 SSG 클럽하우스 쪽에서 나와 지하 1층 로비로 발걸음을 옮겼다. 흥분과 환희가 채 가라앉지 않은 얼굴이었다. 눈시울도 붉게 물들어 있었다.
2022시즌 SSG 최고 몸값의 사나이는 김광현이었다. 한국시리즈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을 만든 선수는 5차전 대타 역전 끝내기홈런의 주인공은 김강민이었다. 그러나 2022시즌을 통틀어 문학구장의 ‘최고 스타’는 SSG 구단 운영의 최정점에 있는 정용진 구단주였다. 정용진 구단주는 경기장을 찾을 때면 팬들과 교감했다. 온라인 공간에서는 팬들과 소통했다.
문학구장에서는 지하 1층과 상층부를 오르내리는 엘리베이터를 이따금 이용하지 못할 때가 있다. 이유를 물을 것도 없다. ‘VIP’ 정용진 구단주의 ‘직관’하는 날이다. 정용진 구단주는, SSG 팬들의 시야에 들어와 있는 공간에서는 웬만한 스타 플레이어 이상의 사랑을 받았다. 또 경기에서 이긴 날이면 문학구장 빅보드 대형화면에 등장해 몸동작을 가미한 세리머니로 스탠드의 팬들의 함성에 응답하고, 그 기쁨을 나누기도 했다.
프로야구단의 고객은 일반 기업체의 고객과 다르다.
예컨대 보통의 소비자는 A사 제품에 만족도가 떨어지면 B사 제품으로 바로 옮겨간다. A사 제품에 문제가 생긴 연유를 굳이 따져 묻지 않는다. 대체 브랜드를 찾으면 되기 때문이다. 또 B사 제품에 대만족하더라도, B사의 오너에게까지 환호하는 일은 없다.
프로야구 소비자는 A구단에 대한 불만이 생겨도, B구단으로 옮겨가는 일이 거의 없다. 그보다 A구단에서 나타난 불만족스러운 결과의 배경에 관심을 두고 이성적 진단과 감정적 표현을 하게 된다. 국적을 바꾸기 힘들듯, 좋아하는 구단을 바꾸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프로야구 소비자는 해당 상품이자 모체인 구단과 일체감을 갖는다. 그들의 다른 이름이 바로 ‘팬’이다.
정용진 구단주는 야구단 인수 뒤 어떤 대기업 오너도 해보지 못한 경험을 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자기 돈까지 내고 특정 상품이든 서비스를 구매한 소비자로부터 강렬한 응원을 받는 일은, 일반 시장에선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SSG 랜더스는 최고의 시즌을 마치고도 ‘단장 인선’ 문제로 불편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전신 SK 야구단을 인수하고 2년째. 야구단과 함께 이동한 이사급 인사를 바꾸는 것은 일반 기업체의 접근법으로는 보편적 현상에 가깝지만, 프로야구단의 인사 기준으로는 거북해 보이는 측면이 다분히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SSG로서는 통합 우승 원년을 보내고 있다. 일반 기업체 이사진 이동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소비자는 없지만, 야구단의 팬들은 다르다. 올해 성과를 만든 구성 요소 가운데 하나였던 단장에 대해서도 어떤 식으로든 평가하는 게 팬들의 습성이다. 그래서 이 겨울, 정용진 구단주는 또 한번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어쩌면 야구단의 인사는, 기업의 인사보다는 정부 관료 인선 같은 공적 영역의 인사와 더 가까워 보이기도 한다. 여론을 등에 업는 최고의 힘은 ‘공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