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번의 과열 양상이다. 늘 그래왔다. 하나의 장르가 나타나 유행하면 곧바로 수많은 유사장르가 쏟아진다. 대한민국 예능가가 순식간에 여행 예능 ‘레드 오션’에 빠졌다.
3년 가까이 지속했던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나고 각국이 걸어 잠갔던 여행의 빗장을 풀자 방송가는 가장 먼저 여행 예능에 몰두했다. 여행 예능은 예능의 형식을 통해 해방감을 줄 수 있고, 매번 다른 국가의 다른 지역에서 독특한 문물을 보여주는 형식이기 때문이다.
최근 방송가에도 새롭게 론칭하는 작품의 열에 팔 할은 여행 예능이다. 이렇게 많은 여행이 구성되고 있지만, 아직 기획단계이거나 촬영단계라 공개가 안 된 작품도 부지기수다.
tvN은 지난 2일부터 ‘텐트 밖은 유럽’의 스페인 편을 방송 중이다. 조진웅과 최원영, 박명훈과 권율이 출연 중인 프로그램은 지난해 방송된 ‘텐트 밖은 유럽’ 이탈리아 편의 후속편으로 캠핑을 주제로 유럽의 인상적인 풍경을 배경으로 절친한 연예인들의 일상을 그린다.
7일에는 JTBC ‘뭉뜬 리턴즈’가 방송됐다. 김용만, 김성주, 안정환, 정형돈 등 7년 전 ‘뭉치면 뜬다’로 패키지여행을 떠났던 멤버들이 오랜만에 배낭여행을 떠나는 형식이다.
9일부터는 SBS ‘수학없는 수학여행’이 뒤를 이었다. 디오와 지코, 크러쉬, 잔나비의 최정훈 등 가수들과 이용진, 양세찬 등 개그맨들이 참여한 프로그램은 일본 오키나와를 배경으로 특별한 과제와 게임을 진행하는 여섯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다.
19일에는 MBN이 ‘난생처음 우리끼리’가 방송됐다. 노홍철, 이국주, KCM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은 베트남을 시작으로 자유여행의 날 것 느낌을 강조했으며, 27일부터 방송되는 tvN ‘아주 사적인 동남아’는 동남아에 베테랑인 이선균, 장항준, 김도현, 김남희의 여행을 그린다.
이 밖에도 여행 예능은 4월 방송 예정인 tvN ‘부산촌놈 in 시드니’, 두바이로 떠나는 티빙의 ‘브로마블’, 김소은의 여행 예능 KBS2 ‘미미트립:내맘대로패키지’(가제) 등 줄줄이 방송이 예고돼 있다. 이미 방송 중인 ‘배틀트립’ ‘걸어서 환장 속으로’ ‘지구마불 세계여행’ 등을 합하면 그 숫자는 폭증한다.
문제는 여러 예능의 형식이 ‘그 나물에 그 밥’인 듯 비슷하다는 점이다. 기본적으로 여행예능은 여행지에서 색다른 그림을 빼낼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인지 공통점이 있거나 절친한 사이에 있는 연예인들을 묶어 이들의 여행을 그린다는 공통점이 있다.
여행 유튜버들이 등장하는 ‘지구마불 세계여행’이나 가족이 등장하는 ‘걸어서 환장 속으로’ 정도를 빼놓으면 이런 느낌은 거의 비슷하다. 거기다 여행지 역시 ‘지구마불 세계여행’ 정도를 빼놓고 나면 휴양지가 있는 동남아나 경치가 좋고 편의성이 있는 유럽 등에 편중된다.
코로나19 기간 대중들이 여행에 목말랐을 때 여행 크리에이터들은 오히려 특수를 누렸다. 유튜브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이들이 인기를 얻은 이유는 TV에서 잘 보여주지 않는 새로운 장소와 새로운 사람, 마냥 편하지는 않은 고생길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TV 속 대부분의 여행 예능은 이러한 기조를 따르지 않고 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지금의 예능 프로그램은 전통적인 매체가 해오던 방식, 예를 들면 연예인들이 사전에 찾아놓은 휴양지를 가서 리얼리티 형식을 빌리는 프로그램이 있고, 유튜브를 통해 부각된 ‘진짜 여행’의 콘텐츠가 양분 중”이라면서 “유튜브 콘텐츠의 예능에 익숙해진 시청자들에게는 기존 프로그램의 리얼리티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드는 듯하다. 그래서 재미가 없다고 느껴진다”고 짚었다.
정덕현 평론가는 “‘지구마불 세계여행’의 경우도 자유롭던 크리에이터들의 모습을 김태호PD의 규칙으로 제한을 하면서 원래 색깔이 안 나오는 단점이 나오고 있다”며 “여행 예능이 이 양분된 흐름 사이에서 길을 못 찾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