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시간 반 기다려도 노게임은 NO···우천취소에 체한 소화불량 KBO리그

입력 : 2023.09.18 15:55 수정 : 2023.09.18 15:59
KT-한화전이 중단된 17일 대전구장에서 비로 경기가 중단된 채 정비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김은진 기자

KT-한화전이 중단된 17일 대전구장에서 비로 경기가 중단된 채 정비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김은진 기자

올시즌 KBO리그에서는 우천 노게임이 총 6차례 나왔다. 4월에 3경기, 6월에 2경기, 그리고 8월에 1경기다. 그 중 4경기의 주인공이었던 KIA는 현재 잔여경기가 가장 많아 일정에 허덕이고 있다.

시즌 중반까지 제법 나오던 노게임은 9월 이후 전무하다. 대신 장시간 중단사태가 쏟아지고 있다. 9월 들어 지난 17일까지 비로 중단된 경기는 7경기나 나왔다. 그 중 5경기가 70분 이상, 또 그 중 2경기는 무려 100분 이상이나 중단됐지만 노게임으로 선언된 경기는 없었다. 반면 6회 이후로 넘어간 채 중단됐던 13일 광주 롯데-KIA전과 15일 대전 LG-한화전은 각각 46분과 47분간 중단됐다가 강우콜드게임으로 끝났다. 경기가 성립되는 강우콜드는 나와도 경기 취소에 준하는 노게임은 100분 이상을 기다릴지언정 선언되지 않는 것이다.

근래 몇 년 동안 전과는 달라진 기후에 황당할 정도로 기습적인 폭우가 잦아 KBO리그는 일정 소화에 고전하고 있다. 국가대항전이 늘어 매년 시즌 뒤 소화해야 하는 일정이 있는데 시즌 중반까지 우천취소가 잦다보니 막바지에는 ‘마지노선’을 정해놓고 정규시즌 일정을 끝내려 진땀을 뺀다. 우천 노게임이 6월까지는 5번이나 나왔던 반면, 9월 이후로는 ‘경기 성립’에 우선 초점을 맞추는 모습은 지난 17일 대전 KT-한화 더블헤더 2차전을 통해 여실히 확인할 수 있다.

KT가 3-1로 앞서던 5회말 첫 타석에서 비로 중단된 이 경기는 역대 최장 시간인 3시간24분이나 중단된 끝에 재개됐다. 우천 중단의 첫번째 기준은 비의 양이 아니라 비로 인한 그라운드 상태여야 하지만, 이날 경기는 이미 그라운드에 흠뻑 물이 고인 상태에서 뒤늦게 중단됐다. 그 상태로 ‘천천히’ 대형 방수포를 깔았고 약 30분 뒤 비가 멈춰 방수포를 걷었으나 그라운드 상태는 엉망이었다. 그러나 이날도 노게임은 없이 그라운드 재정비를 택했고, 홈 구단의 거북이 같은 정비 작업이 더해져 역대 최장시간 중단 신기록이 나오고 말았다. 3시간 반 동안 발 묶인 선수들의 불만은 물론 경기를 절반도 보지 못하고 기다리다 귀가를 택해야 했던 관중들의 환불 요청과 원성도 빗발쳤다.

현장에서는 이미 우천 관련 경기 운영에 대한 성토가 쏟아진 지 오래다. 경기 개시와 중단 여부를 합리적으로 결정하지 못하는 경기운영위원과 심판진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 전문적인 그라운드 키퍼가 턱없이 부족한 리그 환경에 대한 지적도 쏟아진다. ‘인력이 부족해’ 정비에 3시간이나 걸린 17일 대전구장 사태는 대표적이다. 최근 한 지방 구장에서는 홈팀 선수들이 원정을 떠난 사이 방수포도 덮어놓지 않은 채로 폭우가 쏟아져 정작 홈 경기 전 그라운드 정비를 하느라 양 팀 선수들이 실내 훈련을 하고 경기에 들어간 촌극도 벌어졌다.

허구연 KBO 총재가 지난해 LG와 키움의 플레이오프 1차전을 지켜보고 있다. 정지윤 선임기자

허구연 KBO 총재가 지난해 LG와 키움의 플레이오프 1차전을 지켜보고 있다. 정지윤 선임기자

리그의 한 베테랑 선수는 “많이 개선됐다고 해도 잔디 관리가 전혀 안 돼 있는 구장도 있고, 대전이나 고척, 잠실은 조명이 어두워 경기력에도 지장이 있다”고 현실적인 환경을 지적하며 “우천 중에 심판과 그라운드 관리 측 사이에 소통만 원활해도 경기 운영은 훨씬 원활해질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아쉬워했다.

허구연 총재의 KBO는 늘 ‘메이저리그식’을 지향하며 선진 야구 시스템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대륙의 동부와 서부를 오가야 해 몇 시간이라도 기다려야 하는 미국이 아닌 대전 혹은 수원에서 2~3시간 무리한 중단 사태가 벌어지는 것은 코미디 같은 일이다. 야구 인기를 위해 관중의 지루함을 덜고자 ‘스피드업’을 강조하며 분 단위로 경기 시간을 재는 이 시대의 야구라면 더욱 그렇다. 오히려 메이저리그에서는 레이더를 통한 일기예보를 수시로 확인하며 필요하다면 비가 내리기 전 미리 방수포를 깔아 그라운드를 보호하기도 한다. 그라운드 키퍼의 전문성이 인정을 받고 충분한 인력을 갖춘 채 심판과 소통도 원활해야 가능한 일이다.

기후가 달라져 앞으로도 비로 인한 KBO리그의 고민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더블헤더를 시즌 초반 미리 치르는 등 제도 개선을 위한 논의에 이미 들어갔지만, ‘메이저리그식’을 지향하는 KBO라면 경기 운영 능력과 환경에 대한 근본적인 개선 노력이 필요하다. 메이저리그 개막전을 한국에서 개최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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