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진의 다이아몬드+] 이의리 교체, 진짜 사유는 ‘부상’ 아닌 ‘변심’···산으로 가는 류중일호](https://images.khan.co.kr/article/2023/09/22/news-p.v1.20230519.dc2c0aac4f214fadb3f95cc73a997495_P1.jpeg)
대표팀 “부상 회복 중이지만 최상 경기력 어렵다”···소집 하루 전 이의리 제외
항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노리는 야구 대표팀이 산으로 가고 있다. 최종엔트리를 넉 달 전에 발표해놓고 대회 직전에 발등에 불이 떨어지자 불투명한 사유로 원칙 없이 선수를 교체하고 있다.
야구 대표팀은 22일 투수 이의리(KIA)를 아시안게임 최종 엔트리에서 제외한다고 발표했다. 이의리는 지난 6월초 발표된 최종 엔트리 24명에 포함된 채 올시즌을 치르며 대회를 준비해왔으나 소집훈련 하루 전 제외됐다.
이의리는 투구 중 손가락에 물집이 생겨 지난 10일 소속 팀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이후 회복하고 21일 한화전에 등판했으나 1.2이닝 2피안타 3사사구 3탈삼진 5실점(4자책)으로 부진했다. KBO는 “손가락 부상에서 회복 중이나 대회 기간 최상의 경기력을 보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교체 사유를 설명했다. 완전한 말장난이다. “부상에서 회복 중이지만 최상의 경기력을 보이기 어렵다”는 말 자체가 결국 ‘부진해서 교체한다’는 뜻이다.
대표팀 최종 엔트리에 포함된 선수를 교체할 수 있는 사유는 오로지 부상이다. 대회 조직위에 엔트리를 제출하지 않은 시점에 최종 엔트리 포함 선수들 중 상당수가 그야말로 심각한 부진을 겪었을 때도 KBO는 “부상 아닌 부진으로는 교체할 수 없다”고 설명해왔다. 그 원칙을 이의리를 교체하며 깬 것과 다름없다.
KIA도 강력 반발···“이의리가 회복중? 손가락에 아무 문제 없다”
부진한 선수를 대책 없이 데려가도 문제는 생긴다. 그러나 단순한 부진만으로는 교체할 수 없다는 원칙이 있기에 소집 하루 전 이의리를 전격 교체한 것은 심각한 반칙이다. 무엇보다 이의리는 ‘부상에서 회복 중’인 상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미 손가락의 물집은 다 회복됐다. 한화전에 등판한 21일에는 회복된 손가락 사진까지 찍었고 대표팀이 이미 다 확인한 상태다.
그동안 이의리의 국가대표 차출을 대비해 몸 상태에 각별히 신경써 관리했던 KIA도 황당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의리는 앞서 8월말에 열흘간 부상자 명단에 오른 바 있다. 어깨에 조금 불편함을 느껴 검진 결과 작은 염증이 있었다. 주사 치료도 필요없는 작은 통증이었고 그냥 엔트리에 두고 있을 수도 있었지만 국가대표 차출을 대비해 무리시키지 않고자 순위 싸움 중에도 이의리를 엔트리에서 제외했었다. 21일 한화전에서는 대표팀에 합류 직전이라 투구 수도 조절했다. 김종국 KIA 감독은 경기 전 “30~40개만 던지게 하려고 한다. 대표팀에 합류해서 투구 수 늘리면서 최선의 경기를 하고 오길 바란다”고 말했고, 이의리는 계획대로 45개만 던지고 마운드를 내려왔다. 그러나 이튿날 대표팀에서 전격 제외됐다.
KIA 구단은 “이의리는 현재 100% 정상 투구를 할 수 있는 상태다. ‘회복 중’이 아니라 이미 회복했다. 어깨 통증 때도 던지는 데는 문제 없었지만 국가대표에 가야 해서 무리 안 시키고자 제외했던 것이다. 물집도 정상임을 확인하고 투입했고 어제 경기 뒤에도 상태를 다 확인했다. 손가락은 물론 이의리의 몸 상태에는 아무 이상이 없다”고 어처구니 없는 대표팀의 결정에 항변했다.

류중일 아시안게임 야구대표팀 감독(오른쪽)과 조계현 KBO 전력강화위원장이 지난 6월9일 최종엔트리를 발표하고 있다. 정지윤 선임기자
감독-전력강화위원장 전날 직접 관전···이의리만 ‘최종 테스트’
대표팀이 이미 멀쩡하게 회복한 투수를 ‘회복중’이라고 포장하여 교체한 이유는 결국 “최상의 경기력을 내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대회보다 넉 달이나 전에 엔트리를 발표하면서 ‘최종’이라고 성급하게 못박아놓고는 선수들의 경기력이 변수로 떠오르자 발등에 불이 떨어진 대표팀은 교체 명분을 찾으며 이의리를 교체했다. 아예 1군 무대에서 한 번도 던지지 못해 교체된 구창모(NC)와는 완전히 다른 케이스다.
대표팀은 이미 지난 21일 낮 구창모를 제외하기로 발표하면서 “다른 선수 중 부상의 영향으로 경기력이 저하됐다고 판단 되는 경우에는 몸 상태를 면밀히 살펴 추가로 교체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저녁 등판을 앞둔 이의리를 염두에 둔 설명이었다. 이의리는 이날 대표팀 류중일 감독과 조계현 전력강화위원장이 직접 야구장에 나타나 세상 심각한 표정으로 자신을 지켜보는 가운데 등판해야 했다. 실전 자체를 나서지 못했던 구창모를 제외하면, 최종 엔트리에 있었던 다른 선수들 누구도 거치지 않은 ‘최종 테스트’를 이의리만 받은 셈이다. 이날 이의리가 무실점 투구를 했더라도 대표팀은 ‘회복중’이라는 사유로 교체할 수 있었을까.
부진한 선수를 무작정 데려가기에는 ‘역대 최약체’라 불리는 대표팀이 처한 상황이 어렵다. 그러나 대표팀 선발에는 늘 원칙과 기준이 있다. 함부로 바꿔서도 안 된다. 금메달을 따고도 사령탑이 온갖 비난을 받고 물러나야 했던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의 사례를 통해 충분히 그 무게감을 확인했다. 그러나 류중일 감독의 야구 대표팀은 성급했던 최초의 선택을 뒤집고자 명분을 끼워맞추고 한 팀과 투수의 뒷통수를 때렸다.
진짜 교체 배경은 무엇···투수로 대체하지 않으면 명분 없는 교체
굳이 이의리를 소집 직전 교체하면서까지, 도대체 대표팀은 무엇을 고민하는 것일까.
대표팀 내부에서는 일본, 대만 등 상대 전력분석을 거친 과정에서 “투수를 너무 많이 뽑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한국은 이번에 24명 엔트리 중 절반인 12명을 투수로 채웠다. 내야수는 7명, 외야수는 3명밖에 되지 않는 불균형의 구성이다. 그러나 초반 구상과 달리 강력한 마운드와 공격력을 과시하는 대만과 일본의 모습을 확인한 채 이정후(키움) 까지 낙마하자 투수를 줄이고 야수를 늘려야 하는지 논의하고 있다.
더구나 이 과정에서 내야수 김도영(KIA)이 여러 차례 거론됐다. 대표팀이 엔트리 발표 당시 부상으로 재활 중이었던 김도영은 6월말 복귀한 뒤 대활약을 펼쳤다. 이미 부상으로 엔트리에서 제외돼 있던 구창모는 선발하면서 김도영은 뽑지 않았던 대표팀은 이후 엔트리를 너무 일찍 발표해 김도영을 선발하지 못한 것을 두고두고 아쉬워했다. 팀당 3명씩만 선발해야 하는 기준에 따라 이의리, 최지민, 최원준이 이미 선발돼 있는 KIA에서는 더이상 선수를 선발할 수 있는 명분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표팀 소집훈련 전날 이의리가 제외됐다.
대표팀은 23일 소집한다. 선발된 선수들은 22일까지 소속 팀 경기를 치르고 대부분 밤에 서울로 이동해 숙소로 합류, 23일 고척 스카이돔에서 첫 훈련 한다. 10개 팀 모두가 아시안게임 선수 차출을 대비해놓고 모든 구상을 다 짜놓은 시점이다. 순위싸움이 역대급으로 치열하다. 대체자는 이의리보다 나은 경기력을 낼 수 있는 주축 선수여야 하는데, 이 시점에 추가로 새로운 선수를 보내야 하는 팀의 시즌 마지막은 이제 와서 누가 책임질 것인가.
무엇보다 대표팀은 “최상의 경기력을 낼 수 없다고 판단했다”며 이의리를 제외했다. 그렇다면 대체 선수로는 이의리보다 나은, 최상의 경기력을 낼 수 있는 ‘투수’로 반드시 뽑아야 한다. 7명이나 되는 내야수는 물론, 외야수여서도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