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칭스태프가 한 이닝에 마운드를 두 번 방문했으나 투수는 교체되지 않았다. 해당 투수는 올시즌 리그 톱 에이스, 플레이오프 분수령이 될 1차전 호투 중이던 에릭 페디(NC)였다. 양 팀 모두에게 매우 예민한 상황은 심판의 납득하기 어려운 ‘해석’으로 종결됐다.
지난 30일 수원 KT위즈파크에서 열린 KT와 NC의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NC가 8-1로 앞선 5회말 1사후 페디가 심판의 볼 판정에 항의했다. 문상철에게 풀카운트에서 던진 7구째가 볼로 판정돼 볼넷이 되자 페디가 “스트라이크”라고 외치며 조금 흥분한 듯 이민호 구심을 향해 다가갔다. NC 더그아웃에서 강인권 NC 감독이 직접 달려나갔다. 구심도 페디 쪽으로 이동하며 서로 충돌할 것 같은 분위기를 감지했기 때문이다. 강인권 감독은 파울라인을 넘어 그라운드 안으로 들어갔다. 페디를 향해 ‘하지 말라’는 듯 손짓을 했고, 구심을 붙잡고 이야기를 나눴다. 페디는 2루수 박민우가 붙잡고 있었다.
별 일 없이 사태는 진정됐다. 페디가 투구를 이어가야 할 차례, 이번에는 NC 김수경 투수코치가 나갔다. 마운드로 올라가 페디와 이야기를 나눴다. 한 번 더 진정시키기 위한 듯 보였다.
그러자 이강철 KT 감독이 그라운드로 나갔다. 코칭스태프의 한 이닝 2차례 마운드 방문 여부를 확인한 것이다. 오랜 야구 규칙에 따르면 코칭스태프가 한 이닝에 마운드를 두 번 방문하면 해당 투수는 교체돼야 한다.
야구규칙 5조10항규칙(l) 마운드 (2)에 따르면 감독이나 코치가 한 회에 동일 투수에게 두 번째 가게 되면 그 투수는 자동적으로 경기에서 물러나야 하고 (4)감독이나 투수코치가 투수에게 갔다가 투수판을 중심으로 18피트의 둥근 장소를 떠나면 한 번 간 것이 된다. 이 조항의 [주1]은 우리나라에서는 이 ‘투수판을 둘러싼 18피트 둘레의 장소’를 파울라인으로 대체해 적용한다고 하고 있다. 즉, 코칭스태프가 한 이닝에 파울라인을 두 번 넘으면 해당 투수는 교체돼야 한다.
더불어 [주3]에서 ①감독이나 코치가 파울라인 근처까지 가서 투수에게 지시했을 경우는 ‘투수 곁에 간 횟수로 계산한다’고 하고 있다. 파울라인을 넘었고, 페디에게 손짓으로 지시를 한 NC 감독의 방문이 이에 해당된다. KT가 충분히 항의할만 한 상황이다.
그러나 심판진은 KT의 항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강철 감독과 김태균 수석코치에게 한참 동안 설명을 했다. 번복될 기미가 없다고 판단한 듯 이강철 감독은 전혀 납득하지 못하는 표정으로 결국 더그아웃으로 돌아갔다. 경기는 그대로 속행돼 페디는 투구를 이어갔다.
KBO는 이 상황 뒤 “스피드업 규정 상 마운드 방문 횟수가 있다. 심판진은 강인권 감독이 페디에게 간 게 아니라 이민호 심판에게 온 것으로 판단해 페디를 교체하지 않았다”고 심판진 설명을 전달했다.
이해불가다. 한 이닝 두번 마운드 방문시 투수 교체 규정은 스피드업과는 관계 없는 오랜 규칙이다. 또한 마운드를 방문했다고 보는 구역의 기준 자체가 파울라인이라고 명시돼 있다. 심판진이 해석을 하지 않고 규칙대로 경기를 운영했다면, NC 감독과 투수코치가 5회말에 연달아 파울라인을 넘어 그라운드 안으로 들어갔으니 투수 페디를 교체하는 것이 맞다.
규칙 5.10(l) ‘마운드 방문’ 조항 뒤에는 여러가지 경우의 수들이 주석으로 달려 있다. 경기 중에는 다양한 경우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최대한 명문화 해서 주관적 해석의 여지를 제한하기 위해서다. 규칙 5.10(l)(4)의 [원주]에서는 ‘투수가 다쳤을 때 감독이 그 투수 곁에 가고 싶으면 심판원에게 허가를 요청할 수 있다. 허가가 나면 마운드에 가는 횟수에는 계산되지 않는다’고 하고 있다. 투수가 다친 급박한 상황에서도 감독이 그라운드 안으로 들어가려면 심판의 허가를 받아야 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감독이 깜짝 놀라 달려나간 이유 자체가 페디 때문이고 명확히 파울라인 안으로 들어갔는데도 심판은 “나를 만나러 왔다”고 ‘해석’하고 마운드 방문으로 계산하지 않은 것이다.
잘 던지고 있던 선발 투수 교체 여부는 경기 흐름을 바꿀 거대 변수가 된다. 당시 점수 차가 8-1이 아닌 접전이었다면 심판의 해석은, 그 뒤 상황은 어떻게 전개됐을까. 잘 던지던 페디가 갑자기 볼 판정에 흥분한 것은 NC도 심판진도 순간 당황할만한 상황이다. 너무 중요한 상황이기에 감독은 순간 ‘파울라인’ 같은 생각은 하지 못할 수 있다. 다만 이후 NC 측이 다시 마운드에 올라가기 전 앞선 상황이 마운드 방문 횟수에 포함되는지를 한 번 확인했다면, 심판은 정확하게 규칙을 적용했다면 경기 운영은 매끄러웠을 것이다.
올시즌 KBO리그는 어느 때보다 판정 논란이 많았다. 현장은 어수선했고 심판들도 고역을 치렀다. 구단주가 KBO를 항의 방문하는 초유의 코미디 같은 사태도 등장했다. 올시즌 최고의 투수 페디는 이날 포스트시즌에서도 역투를 펼쳤다. 교체될 뻔 했지만 교체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6이닝 12탈삼진이라는 플레이오프 신기록을 세웠다. 가을야구에서까지 멋진 플레이와 명승부에 찜찜함을 남기는 판정은 나오지 않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