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강민은 지난 10월31일 김성용 전 SSG 단장과 마주했다. SSG가 김원형 감독을 경질한 날 저녁, 처음으로 진로를 논했다. 유일했던 만남으로 알려져 있다.
선수는 현역 연장의 뜻이 컸지만, 구단은 은퇴 외의 길은 염두에 두지 않고 있었다. 당연히 어떤 합의도 하지 못했다. SSG가 지난 22일 실시된 2차 드래프트를 앞두고 제출한 보호선수 제외 명단에서 시즌 중 은퇴를 발표한 좌완 김태훈과 달리 김강민 이름 옆에는 ‘은퇴 예정’임을 표기하지 못한 이유다. 선수는 은퇴 의사가 없었다.
22일 드래프트 현장에 있었던 타 구단 프런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SSG는 한화가 김강민을 지명한 직후에도 동요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 지방 구단 단장은 “한화가 김강민을 부른 순간 장내가 갑자기 소란해졌다. 다들 웅성웅성 했었다”고 전했다. 또다른 지방 구단 프런트도 같은 상황을 전하며 “그때 SSG쪽에서 큰일났다는 분위기 같은 것은 보지 못했다. 끝나고 나갈 때도 자기들끼리 웃으면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SSG가 애초에 타구단의 김강민 지명 여부가 몰고올 파장에 대해 무감각 했다는 뜻이다.
구단이 40대에 접어든 선수의 은퇴를 원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예우를 취하는가에서 구단의 성향과 수준이 드러난다. 리그를 발칵 뒤집은 ‘김강민 사태’는 SSG가 불과 1년 전 창단 첫 우승을 이끈 한국시리즈 MVP이자 프랜차이즈 스타를 2차 드래프트에 내놓았다는 데서 출발했다.
핵심은 그 이후에 있다. SSG는 드래프트 당일 오후 김강민에게 연락을 취해 면담 당시와 다른 조건들을 꺼내며 은퇴하라고 설득을 시도했다. 역대급 ‘토사구팽’에 여론이 끓기 시작하자 뒤늦게 수습하고자 한 것이다.
SSG는 드래프트 직후 언론을 통한 인터뷰에서는 “은퇴 협의 중이었다” “전혀 (지명을) 예상못했다”는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을 내놓기도 했다. 2차 드래프트 보호선수 명단에서 제외한 것은 타 구단에 ‘데려가도 좋다’고 하는 일종의 수락 행위다. 이에 타 구단이 지명하자 해당 선수에게 ‘가지 말고 은퇴하라’고 하는 행위는 그 자체로 상도덕 위반이다. 이번 사태를 본 타 구단들은 “사전에 선수와 협의를 마치든지, 그러지 못했으면 타 구단들에 사정을 설명하고 ‘뽑지 말아달라’고 양해를 구했어야 하는데 아무 것도 안 하지 않았느냐”고 하나같이 황당하다고 반응했다.
사태의 중심에는 김성용 전 단장이 있다. 지난해 우승 이후 논란 속에도 단장으로 승격한 김 전 단장은 시즌을 마치고는 운영 전권을 쥐고 움직여왔다. 3년 재계약 한 김원형 감독을 1년 만에 경질하고, 후임 사령탑 선임 과정에서 한국시리즈를 앞둔 타 구단 코치를 후보라고 직접 언급해 논란을 빚었다. NC 구단 지원으로 해외 연수 중이던 손시헌 코치를 퓨처스 감독으로 가로채 ‘상도덕’ 논란을 일으켰고, 최근에는 다년계약을 해 계약기간이 남아있는 타 구단 코치를 접촉해 막무가내로 영입하겠다고 해 충돌을 빚기도 했다. 타 구단 단장들 사이에서 “프로야구를 몰라서 그러는 건 알겠지만 리그 질서를 완전히 무시하는 수준”이라는 불만이 쏟아지던 중 김강민 사태가 터졌다.
SSG는 지난 25일 일련의 사태 책임을 물어 김성용 단장을 “좌천 시킨다”고 발표했다.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징계한듯 보이지만 실상은 달라보인다. 김성용 전 단장은 2군의 R&D 센터장으로 이동했다. SSG가 체계적인 육성을 주창하며 2022년 신설한 이 R&D 센터는 구단 사정을 아는 이들 사이에서는 ‘김성용을 위해 만든 자리’로 불렸다. 고교 감독이었던 김성용 전 단장이 지난해 R&D 센터장으로 SSG에 입성해 1년 만에 단장이 된 올해 SSG에 새 R&D 센터장은 없었다. 단장에서 물러나는 대신, 1년 만에 사라졌던 R&D 센터장 자리를 다시 만들어 앉혀준 셈이다. 퓨처스리그에는 김성용 전 단장이 최근 직접 물갈이 해 새로 뽑아놓은 코치진이 있기도 하다. SSG가 ‘좌천’이라고 강조했지만 많은 이들은 ‘피신’으로 해석하고 있다.
한때 리그에서 ‘왕조’로 군림했던 SK를 인수해 2021년 재창단한 SSG는 불과 3년 사이 여러 사건으로 리그를 아수라장으로 만들고 있다. 계약 하나에도 모그룹의 눈치를 봐야 하는 정상적인 프로야구 시스템이라면, 물정 모르는 단장 1인이 마음대로 폭주하는 일이 가능한 것일까. 야구단 운영에 대해 잘 아는 SK 출신의 젊은 프런트들도 여럿이지만 단장에게 장단을 맞추다보니 이 지경까지 왔다고 보는 시선이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은퇴 합의하지 못한 김강민을 2차 드래프트에 내놓고 실제 지명이 됐는데도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현장 주요 프런트들의 정무감각까지 둔해진 모습이다.
감독 경질과 선임, 코치 영입, 2차 드래프트까지 계속해서 선의의 피해자들을 양산하면서 논란이 반복되도록 손놓고 있던 구단이 이제서야 ‘조치’를 한 것도 프로야구에서는 보기 드물 정도로 미숙한 행정이다.
SSG는 당분간 민경삼 대표이사 주도로 운영하면서 새 단장을 선임하겠다고 했다. 현재 리그에서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는 제대로 인지하고 있는 것일까. 후임 단장 선택 과정과 이후 행보로 보여줘야 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