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심판의 ‘입’이 문제···‘빼박’ 들켜버린 은폐 시도, 이러려고 ‘세계 최초’ ABS 도입했나

입력 : 2024.04.15 07:31 수정 : 2024.04.15 14:51

논란의 14일 대구 삼성-NC전 심판진,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가

지난 14일 대구 삼성-NC전에서 ABS 스트라이크 판정을 콜로 선언한 데 대해 NC가 항의한 뒤 심판이 모이자 삼성 박진만 감독이 다시 항의하고 있다. 삼성 라이온즈 제공

지난 14일 대구 삼성-NC전에서 ABS 스트라이크 판정을 콜로 선언한 데 대해 NC가 항의한 뒤 심판이 모이자 삼성 박진만 감독이 다시 항의하고 있다. 삼성 라이온즈 제공

자동투구판정시스템(ABS)은 올해 한국야구위원회(KBO)가 ‘세계 최초’를 강조하며 도입한 가장 큰 변화다. 메이저리그에서도 하지 못한 ABS 도입을 KBO가 먼저 과감하게 나선 가장 큰 이유는 해마다 들끓은 오심 논란 때문이다. 심판의 눈을 기계의 눈으로 바꿔 최소한 일관되고 획일화된 판정으로 논란의 씨앗을 제거하겠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ABS와 관련한 대형 논란은 결국 심판으로부터 나오고 말았다. 지난 14일 대구 삼성-NC전에서 ABS의 ‘스트라이크’ 판정이 심판의 입을 통해 ‘볼’로 바뀌었고 이와 관련한 심판들 간의 의심스러운 대화가 생중계를 통해 고스란히 노출됐다. 듣고도 믿기 어려운 발언에 ‘설마’ 하면서 리그가 술렁이고 있다.

ABS ‘스트라이크’를 ‘볼’로 콜, 명백한 실수···같은 타자 타석인데도 “어필 시효 지났다”

NC가 1-0으로 앞서던 3회말 2사 1루, NC 선발 이재학이 삼성 이재현을 상대로 던진 2구째에 문승훈 주심이 볼을 선언했다. 볼카운트 1-1이 됐고 이때 1루주자 김지찬의 도루 관련 비디오 판독이 진행됐다. 이후 이재학이 공 3개를 더 던져 풀카운트로 몰렸을 때 강인권 NC 감독이 그라운드로 뛰쳐나왔다. 앞서 볼로 선언된 이재학의 2구째가 KBO가 제공한 ABS 확인용 태블릿에는 스트라이크로 표기돼 있었기 때문이다.

KBO가 도입한 ABS는 기계가 스트라이크·볼 여부를 판정하면 주심이 귀에 꽂은 ‘인이어’를 통해 음성으로 전달받아 콜을 한다. 현장 소음 등으로 인해 잘 듣지 못했다고 스스로 판단한 경우에는 경기를 잠시 중단하고 확인한 뒤 정확히 콜을 하도록 하고 있다. 실제 지난 13일 대전 한화-KIA전의 주심은 경기를 중단하고 구단 태블릿으로 확인한 뒤 최종 콜을 했다.

그러나 14일 대구 경기의 주심은 잘못된 콜을 했고, 알았는지 몰랐는지 경기를 그대로 진행했다. NC의 어필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해당 심판조 팀장인 이민호 1루심은 마이크를 잡고 “음성이 볼로 전달됐는데 ABS 모니터상 스트라이크로 확인됐다. NC측이 이 부분에 대해 어필했지만 규정상 다음 투구가 이뤄지기 전에 어필했어야 한다는 점에서 어필 시효가 지난 것으로 봐 풀카운트 그대로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지난 14일 대구 삼성-NC전에서 ABS가 스트라이크로 판정한 공을 볼로 선언한 뒤 항의를 받자 심판들이 모여 논의하고 있다. SBS스포츠 중계화면 캡처

지난 14일 대구 삼성-NC전에서 ABS가 스트라이크로 판정한 공을 볼로 선언한 뒤 항의를 받자 심판들이 모여 논의하고 있다. SBS스포츠 중계화면 캡처

ABS 판정에 따르면 이재현은 이미 삼진으로 물러나 이닝이 종료됐어야 하지만, 이재현은 그대로 타석에 섰고 경기가 중단된 8분을 기다렸다가 다시 던진 이재학으로부터 바로 볼넷을 얻어 출루했다. 이재학은 이후 적시타 2개를 연달아 맞고 3실점, 1-3으로 역전 당했다.경기 양상이 완전히 달라졌다. 심판이 잘못 콜 한 것이 명백하고, 그로 인해 해당 선수들의 기록은 물론 경기 결과가 뒤바뀌는 상황에서, 심지어 해당 타자가 여전히 타석에 있는데도 오류를 정정할 수 없는 것이다.

규정상의 어필 시효 자체가 비현실적이다. 투수가 공을 던진 뒤 태블릿에 판정이 뜨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범적용이지만 피치클락까지 도입해 투수들은 18~23초 안에 바로 다음 투구를 해야 한다. 더그아웃에서 투수가 던질 때마다 확인하기 위해 태블릿만 들여다보고 있는 ‘전담요원’이 있지 않은 이상, 명백한 콜 오류에 대해서는 어필시효에 대한 최소한의 융통성을 둬야 한다.

은폐 모의 의심받는 심판 간 대화 노출···중요한 것은 오로지 면피?

기계의 오류가 아니라면 주심이 잘못 들은 것인데, 이날 KBO의 ABS 상황실 근무자는 해당 투구에 대한 기계 판정을 ‘스트라이크’ 콜로 들었다고 확인했다. 정황상 주심이 잘못 들은 것으로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운영의 실수에서, 나아가 더 큰 화를 부른 것은 심판들의 ‘양심’을 의심케 하는 발언 때문이다.

곤란해진 이날 심판진은 한 데 모여 논의를 했고 그 대화 내용이 공교롭게도 생중계를 통해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 중 심판팀장이 “(ABS) 음성은 분명히 볼로 인식했다고 하세요. 아셨죠. 우리가 빠…그거밖에 없는 거야”라고 말한 것이 생중계에 잡힌 것이다. 얼버무린 부분이 “빠져나가려면”으로 해석되면서 심판 잘못을 기계 오류로 돌리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다. 앞뒤 맥락을 정확히 확인해봐야 하지만 전체적으로 발언 자체가 의심과 논란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명확한 해명을 내놔야 하는 상황이다.

‘스트라이크’라고 나온 기계 음성을 현장의 소음 속에서 ‘볼’로 잘못 들을 수는 있다. 그렇다면 잘못 들었다는 사실을 추후에라도 구심 본인이 인지했는지 여부가 이날 심판들의 대화 의도를 판단하는 데 있어 대단히 중요하다. 정말로 ‘실제 콜이 어떻게 나왔든 우리는 무조건 볼이라고 들은 걸로 해야 한다’는 ‘모의’의 취지였다면 굉장히 수치스러운 희대의 사건이다. 정확하게 조사해야 한다.

삼성 박진만 감독(왼쪽)과 NC 강인권 감독이 14일 경기 중 오심으로 경기가 중단된 가운데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SBS스포츠 중계화면 캡처

삼성 박진만 감독(왼쪽)과 NC 강인권 감독이 14일 경기 중 오심으로 경기가 중단된 가운데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SBS스포츠 중계화면 캡처

5일 KT-LG전도 심판팀장 ‘실언’ 논란···베테랑 심판들 왜 이러나

비슷한 사례가 얼마 전 또 있었다. 앞서 5일 잠실 LG-KT전에서는 7-7로 맞선 8회초 2사후 KT 황재균의 타구가 3루심의 파울 선언 뒤 비디오판독을 통해 페어로 정정됐는데, 충분히 2루타 이상이 됐을 타구를 심판이 단타로 정리하고 주자를 1루에 배치했다. 이에 항의한 이강철 KT 감독은 ‘비디오 판독 결과 항의’라며 퇴장됐고 황재균에게 철수를 지시해 잠시 경기가 중단됐다.

당시 KT는 “페어로 판정 번복된 뒤 단타라고 해 2루타 아니냐고 항의했고, 심판이 ‘비디오판독실의 판단결과가 단타’라면서 비디오판독 항의로 묶어 퇴장 조치라고 했다”고 밝혔다. KBO 규정상 비디오 판독후 주자 재배치는 엄연히 심판팀장의 최종권한인데 KT가 들은 바에 따르면 이날 심판팀장이었던 최수원 심판은 이조차 판독실 권한인듯 설명하며 오히려 퇴장 조치한 것이다.

당시 이강철 감독과 최수원 심판 사이 대화는 그 뒤에 있던 KT 코치들과 현장 직원들도 모두 같이 들었다고 하고 있다. KBO는 묵인했다. 며칠 뒤, 선수단 철수로 경기를 지연시킨 이강철 감독만 경고 조치하고, 해당 판정과 심판팀장에 대해서는 아무 언급도 하지 않았다. KT 구단의 추가 항의는 사실상 ‘물증’이 없어 묵살당한 상황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심판들의 수상한 대화가 고스란히 노출돼버렸다. 그냥 넘어가기 어려워지자 KBO는 해당 심판조에 경위서를 제출하도록 했다. NC 구단도 이날 경기 뒤 “KBO에 유선으로 강력하게 항의했다. 공문을 통해 해당 내용에 대한 사과와 적절한 조치를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사람의 눈이 완벽하지 않으므로, 기계로 다시 보는 비디오 판독에 이어 기계가 판정하는 ABS를 도입했지만 경기 운영은 여전히 심판들의 몫이다. 이민호, 문승훈, 최수원 심판은 모두 현재 KBO리그에서 가장 경력이 오래된 베테랑 심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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