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탓 멀티 백업으로 출발
특유의 너스레로 감독에 어필
3연승에 힘 보태며 선발까지

지난 4일 대구 삼성전에서 타격한 뒤 세리머니를 선보이는 롯데 정훈. 롯데 제공
시즌을 시작할 때 조금은 좌절할 법도 했다.
롯데 정훈(37)의 2024시즌 시작은 백업이었다. 후배 나승엽이 1루수 주전을 맡게 되면서 정훈은 뒤로 밀려났다.
정훈은 비시즌 동안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넘어가 특별 과외를 받았다. 현대 입단 동기인 강정호에게 개인 레슨을 받으면서 이번 시즌을 준비했다. 이번 시즌을 향한 각오가 남달랐지만 결국 개막 후 백업으로 밀려난다는 건 자존심이 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게다가 1루 경쟁을 했던 나승엽과 정훈의 경기력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정훈은 상심하지 않았다. 특유의 ‘너스레’로 김태형 롯데 감독에게 꾸준히 어필했다. 대타로 출전할 때에도 타석에 나가기 전에 “감독님, 기다리십시오, 딱 처리하고 오겠습니다”라며 나섰다.
단순히 너스레만 떠는 게 아니다. 그라운드에서 실력도 선보였다.
정훈은 롯데가 치른 34경기 중 한 경기를 제외하고 모두 뛰었으며 타율 0.271 3홈런 15타점 등을 기록했다.
무엇보다 사령탑을 흐뭇하게 하는 건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는 ‘예스맨’의 자세다.
정훈은 지난 4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삼성과의 경기에서 5회 5번타자 오선진의 대타로 투입됐다. 삼진 아웃으로 물러난 정훈은 공수 교대 때 3루수로 출전했다. 기존 3루수 손호영이 햄스트링 부상으로 2군으로 내려가 이 자리를 채울 사람이 필요했다.
3루수로 투입되었지만 정훈은 개의치 않았다. 6-7로 뒤처진 9회 2사 3루에서 김재윤의 2구째 슬라이더를 받아쳐 좌측 담장을 넘긴 것이다. 이 홈런으로 롯데는 8-7로 역전승에 성공했다.
다음 날 아예 5번 3루수로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다. 2018년 5월1일 사직 KIA전 이후 2196일 만의 3루수 선발 출전이었다.
이날도 정훈은 대역전극의 중심에 있었다. 1-2로 뒤처진 7회 고승민의 적시타, 빅터 레이예스의 우전 적시타로 역전한 롯데는 바뀐 투수 우완 이승현을 상대로 전준우가 또 2루타를 뽑아내 2명의 주자를 불러들였다. 정훈도 흐름을 이어가 2루타를 쳐 전준우의 득점을 이끌었다. 후속 타자 나승엽의 좌익수 희생플라이 때에는 홈을 밟았다. 이 과정에서 잠시 햄스트링 불편함을 느꼈고 선수 보호 차원에서 공수 교대 때 교체됐다. 롯데는 4일 삼성전에서 9-2로 대승하며 최근 3연승 행진을 이어갔다.
다행히 정훈의 상태는 나쁘지 않다. 게다가 5일에는 반가운 비도 내려 하루 더 회복할 시간을 벌 수 있었다. 구단 관계자는 “쉬면 상태가 많이 괜찮아 질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