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호(38)가 삼성에서 다시 새롭게 출발한다. 은퇴까지 결심했다가 트레이드로 새 기회를 얻게 된 박병호는 KT 구단에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KT는 28일 잠실 두산전을 마친 뒤 박병호의 트레이드를 발표했다. 삼성 내야수 오재일과 1대1 트레이드로 박병호에게 새 길을 열어주었다.
박병호는 트레이드가 발표된 직후 기자와 통화에서 “(이강철) 감독님과 (나도현) 단장님이 정말 끝까지 마무리를 잘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에서 새 팀을 알아봐주셨고 트레이드까지 성사해주셨다.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인사했다.
개막 직후 박병호가 타격 부진에 빠지자 문상철을 기용했는데 좋은 모습을 보이면서 박병호를 교체 출전시키게 된 KT는 그동안 박병호의 입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 역대 최다 6차례나 홈런왕에 오른 레전드급 선수이기 때문이다.
당사자인 박병호의 고민이 가장 컸다. 이에 4월부터 구단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그 중 지난 25일 수원 키움전을 마친 뒤에는 이강철 감독, 나도현 단장과 면담을 통해 ‘웨이버 공시’까지도 이야기가 나온 상황이었다.
박병호는 앞서 28일 오후 기자와 통화에서 당시 나눈 대화와 상황을 자세히 설명했다. 트레이드가 성사되기 전이었다.
박병호는 “4월부터 구단과 이런 대화를 나눠왔는데 두 달째가 되도록 진행되는 게 없다보니 더 이상은 구단에 짐이 되기 싫었다. (후배의) 자리를 뺏는 그런 상황도 싫었다”며 “연봉이 7억원이나 되는데 대타로 뛰는 현실이 굉장히 부끄러웠다. 그날(25일) 경기에서 키움의 옛 팬 중에 내 유니폼을 들고 오신 분들도 있었다. ‘왜 출전 안 해요?’ 물어보는 팬들도 있었다. 부끄러웠다. 그래서 경기 뒤 감독님을 찾아뵀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박병호가 처음 꺼낸 이야기는 ‘은퇴’였다. 박병호는 “팀 상황이 어쩔 수 없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팀 이적 얘기를 했었던 거다. 그런데 두 달이 되도록 안 되는 것을 보고 여러가지로 점점 내 가치가 이 정도구나 생각했다. 그래서 그날 은퇴하겠다고 말씀드렸다. 남은 연봉은 받지 않고 이대로 은퇴하겠다고 먼저 말씀드렸다”며 “그런데 만류하셨다. 마지막에 마무리를 깔끔하게 할 수 있게 도와주겠다면서, 트레이드를 다시 추진해보겠다고 하셨다. 그래도 안 될 경우에는 웨이버 공시를 택하자고 이야기를 나눴고, 웨이버 공시를 했을 때 아무도 나를 원하지 않으면 그때는 역시 남은 연봉 포기하고 정말 은퇴하겠다고 말씀드렸다”고 밝혔다.
KT는 멈췄던 트레이드를 그날 이후 다시 시도하기 시작했다. 삼성과 이야기가 진행되던 중 박병호가 웨이버 공시를 요청했다는 보도가 28일 낮에 나왔다. 온갖 추측들이 쏟아졌다. 박병호가 출전 욕심에 후배 앞길을 막는다, 돈 욕심을 부린다, 은혜를 모른다는 등 하루종일 온갖 오해가 난무했다. 그러나 이미 27일부터 삼성과 본격적으로 협의를 시작해 트레이드를 논의 중이던 KT 구단은 구체적인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웨이버 공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것은 사실이니 인정할뿐 “우리는 그렇게 헤어질 생각이 없다. 설득중”이라고만 했다. 이때까지는 박병호에게도 트레이드 진행 여부에 대한 사실은 함구하고 있었다. 또 실망할 수도 있기 때문에, 완전히 성사될 때까지는 본인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박병호 역시 오해를 받은 하루 동안 침묵할 수밖에 없았다.
박병호는 “25일에 말씀을 나눈 이후로는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단장님은 트레이드를 다시 알아보고 계시던 중이었는데 오늘(28일) 웨이버 공시 요청 이야기가 기사화 됐다. 정말 여러 추측들과 오해가 있어서 속이 많이 상했다. 구단과 싸우고 그런 게 전혀 아니었는데 뭐라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많이 답답했다”고 말했다.
KT는 사실 4월부터 일부 구단에 트레이드를 시도했지만 워낙 시즌 초반이라 성사는 어려웠다. 상황이 정체되자 기다리던 박병호는 남은 연봉을 받지 않고 은퇴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고, KT 구단이 이를 만류한 상황이다. KT는 25일의 그 면담 이후 다시 트레이드를 적극 추진했고 27일부터 삼성과 본격적으로 교감한 뒤 28일 저녁 합의해 밤에 발표했다.
박병호는 감사한 마음뿐이다. 2년 전, 처음으로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었지만 이적료 부담 때문에 이적이 쉽지 않았고 원 소속 팀 키움으로부터 사실상 방치됐던 박병호는 KT의 손을 잡고 3년 최대 30억원에 계약했다. 박병호는 그해 바로 35홈런을 쳐 3년 만에 다시 홈런왕에 오르고 골든글러브를 다시 수상하며 부활했다. KT도 4번 타자 박병호를 앞세워 강백호가 자리를 비우고 외국인 타자가 부실했던 지난 2년 간 힘차게 달릴 수 있었다.
KT는 리그 역사에 남을 홈런왕 박병호를 웨이버 공시라는 방식으로 내놓는 최악의 상황은 벌어지지 않기를 바랐다. 문상철이 이제 꽃을 피워 기용하게 되면서 박병호를 뒤에 둘 수밖에 없는 상황은 이강철 감독도 내내 신경쓰고 있었다. KT는 시즌을 치르면서 박병호를 중용할 상황이 분명히 올 거라고 여기고 있었지만 선수의 상황과 입장도 헤아리기에 트레이드를 위해 마지막까지 애썼다.
박병호는 “2년 전 힘들어하는 나를 KT가 데리고 와 주었다. 여기서 선수들과 2년 동안 가을야구도 했고 구단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다시 한 번 홈런왕도 할 수 있었다”며 “이번에는 그만두려고 하는 나를 마지막까지 좋은 방향으로 끌어주고 야구인생 마지막을 도와주신 이강철 감독님과 나도현 단장님께, 그리고 KT 구단에 정말 감사드린다”고 인사했다.
박병호는 이제 수원을 떠나 대구로 간다. 박병호는 “삼성에 가서도 최선을 다해 뛰겠다”며 “처음 KT에 왔을 때 수원 팬들이 내 홈런에 기뻐해주고 사랑해주고 식구로 받아주는 느낌에 너무도 행복한 기억에 감사드린다. 사실과는 달랐지만 나로 인해 소란을 일으켜, 구단과 동료들과 팬들에게도 죄송한 마음이다. 마무리를 함께 하지는 못하지만 KT를 영원히 응원할 거다”라고 말했다.
박병호는 이날 잠실에서 경기한 KT 선수단을 찾아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이강철 감독에게도 고개숙여 인사하고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