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호(38·삼성)는 지난달 28일 삼성으로 트레이드된 이후 14경기에서 홈런 5개를 터트렸다. 이 중 4개가 홈구장인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나왔다. 이른바 ‘라팍 효과’다. 좌우중간 펜스까지 거리가 107m에 불과한 삼성라이온즈파크는 대표적인 타자 친화적인 구장으로 꼽힌다. 홈런왕을 6번이나 차지했던 박병호에게 안성맞춤인 구장이다.
사실 아직까진 구장의 덕을 직접적으로 보진 못했다. 박병호가 이적 후 홈에서 친 홈런 4개의 비거리는 120m, 135m 110m, 115m였다. 구장의 덕을 볼 필요 없이 알아서 넘겼다. 그래도 박병호는 라팍 효과를 실감하고 있다. 타석에 들어갈 때 심리적으로 더 편안함을 느낀다고 한다. 그는 “완벽히 중심에 맞지 않아도 좋은 타구가 나올 수 있는 구장이라서 조금 더 여유 있게 타석에 들어갈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KT에서 새 시즌을 시작한 박병호는 올해 개인적인 목표가 있었다. KBO리그 통산 400홈런이다. 홈런 20개를 치면 달성할 수 있는 기록이었다. 그러나 시즌 초반 부진이 길어지며 팀 내 입지가 좁아졌다. 잠시나마 은퇴까지 고민했다. 우여곡절 끝에 오재일과 트레이드돼 푸른색 유니폼을 입었고 마침내 반등에 성공했다. 지난 13일 대구 LG전에선 시즌 8호이자 KBO리그 통산 388호 홈런을 터트렸다. 미국프로야구(MLB) 미네소타 시절 기록한 12홈런을 더해 한미 통산 400홈런을 채웠다. 시즌 전 세운 목표까진 이제 12걸음 남았다.
박병호가 라팍 효과를 느끼고 있다면 삼성은 ‘박병호 효과’를 보고 있다. 박병호는 이적 후 14경기에서 5홈런뿐 아니라 타율 0.280, 12타점, OPS 0.970을 기록하며 중심 타자 역할을 잘해주고 있다. 팀도 이 기간 9승5패(승률 0.643)의 성적을 거두며 KIA, LG 등과 선두 경쟁을 하고 있다. 박병호의 가치는 비단 홈런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적한 지 얼마 되진 않았지만 중량감 있는 베테랑 선수로서 존재감도 크다.
주장 구자욱은 “워낙 경험이 많은 선배라서 조언을 많이 구하기도 하고, (박)병호 형이 먼저 제안해 주는 부분도 있다”며 “최근엔 더 집중할 수 있도록 아웃 카운트 제스처를 다 같이 하자고 말씀해 주셨다. 기본적인 것을 항상 우선해야 좋은 팀이 된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점에서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전했다.
박병호는 젊고 재능 있는 타자들의 성장에도 도움을 주고 있다. 그는 “삼성에 와서 김영웅 선수랑 좀 대화를 많이 했던 것 같다”며 “아무래도 올해 중심 타선이 처음이기 때문에 이런저런 대화를 많이 했다”고 했다. 김영웅은 올해 처음 두 자릿수 홈런을 돌파한 2003년생의 거포 유망주다. 동갑내기 유격수 이재현은 “프로야구에 큰 기록을 남긴 선배님이라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진만 삼성 감독은 박병호와 오승환을 함께 거론하며 “레전드 선수들이 같은 팀에서 뛰고 있는데, 이런 좋은 기회를 젊은 선수들이 보고 많은 것을 배우며 성장했으면 한다”고 기대감을 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