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스 포옛 전 그리스 대표팀 감독. EPA연합뉴스
한국 축구 대표팀 사령탑 후보가 진통 끝에 전 그리스 대표팀 감독 거스 포옛과 잉글랜드 2부리그 노리치시티의 전 감독 다비트 바그너로 압축됐다. 앞서 1순위 후보로 언급됐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출신 제시 마시 현 캐나다 감독, 에르베 르나르 프랑스 여자 대표팀 감독에 비하면 인지도나 성과 모두 떨어진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유럽에서 인정받는 지도자를 데려오기 힘든 상황에서 이들이 대표팀 기술철학에 부합하는지를 따져보는 게 더 중요해졌다.
포옛은 그리스를 이끌고 유로 2024 본선 진출에 실패한 뒤 현재 무직이다. 앞서 2011년 잉글랜드 3부 팀이던 브라이턴을 2부까지 승격시키고, 2014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선덜랜드를 이끌고 리그컵 준우승 등 성과를 거뒀지만 이후에는 그리스, 중국 등 변방 리그만 돌았다.
바그너도 2017년 당시 잉글랜드 2부 팀이었던 허더즈필드를 구단 역사상 최초로 EPL로 승격시키며 주목받았지만, 이후 샬케(독일)와 영보이즈(스위스)에서는 경질되며 내리막길을 걸었다.
한국 축구의 현실적인 위상과 대한축구협회의 지원 수준을 고려하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협회가 제시한 연봉 상한선은 세전 250만달러(약 32억원)로 알려졌는데, 그 정도 액수로는 유럽 무대에서 인정받는 감독을 데려오기는 어렵다. 마시 감독이 직전 소속팀 EPL 리즈에서 받았던 연봉이 350만파운드(약 57억원)다. 현재 대표팀이 손흥민(토트넘), 이강인(파리 생제르맹), 김민재(바이에른 뮌헨) 등 한국 축구 황금세대로 꾸려졌다지만, 이것만으로 동기부여를 하기는 어려운 격차다.
오히려 유럽에서 커리어가 한풀 꺾여 재기를 노리는 지도자를 노리는 것이 현실적인 방안이다. 파울루 벤투, 거스 히딩크 감독도 한국 대표팀을 맡기 전까지는 경력이 내림세였고 1~2년간 무직이었다.
포옛과 바그너는 앞서 사의를 표명한 정해성 전력강화위원장 체제 위원회에서 추려놓은 후보다. 정 위원장 사퇴 이후 감독 추천 임무를 이어받은 이임생 기술총괄이사는 두 후보가 대표팀의 기술철학과 가장 부합하는 지도자라고 보고 현지 면접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다비트 바그너 전 노리치 시티 감독. 게티이미지코리아
협회는 최근 한국 축구가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 ‘빠르고, 용맹하게, 주도하는 축구’라는 키워드를 제시했다. 빠른 공수 전환과 압박, 강력한 몸싸움에 볼 점유율을 높이며 사전에 계획한 대로 상대를 몰아붙이는 축구로 요약할 수 있다. 하지만 바그너와 포옛 모두 완벽하게 부합하는 축구를 펼친다고 보기는 어렵다.
바그너는 강한 전방 압박을 중시한다. 1선 공격수들부터 압박을 펼치며 상대 진영에서 빠른 역습으로 리버풀(잉글랜드)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위르겐 클롭 전 감독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선수 시절 클롭과 한 팀에서 뛰었고, 클롭이 도르트문트(독일) 감독을 맡았을 당시 2군 팀을 함께 지도하며 기술철학을 공유했다. 다만 클롭이 강도 높은 전방압박에 선수들의 체력이 일찍 고갈되는 것을 막기 위해 압박 강도를 낮추거나 수비 진용을 다소 내리는 등 유연성을 발휘했지만, 바그너는 이를 고수하면서 샬케 사령탑 때부터 고전을 면치 못했다.
주도하는 축구를 한다고 보기도 어렵다. 직전 소속팀인 노리치의 볼 점유율은 잉글랜드 2부에서도 평균 이하를 기록했다. 상대에게 점유율을 다소 내주면서 기다렸다가 특정 지역에서 강한 압박을 통해 역습으로 득점하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역습할 때에는 최대 6~7명까지 공격에 가담해 공수 밸런스가 깨지는 것도 단점으로 지적됐다. 압박도 역습하다가 공을 뺏겼을 때부터 시작되는 식이다.
포옛 감독도 그간 맡은 팀들에서 공격적으로 주도하는 축구를 보여주진 못했다. 먼저 수비 진용을 갖춰놓고 시작하는 것을 중시하고, 역습 시 롱볼을 통한 직선적인 공격 전개를 선호한다. 이후 세컨드 볼을 따내 공격을 이어나가는 유형의 전술을 펼친다. 세계적인 명문 구단에서 뛰며 후방에서부터 세밀한 빌드업을 통해 만들어가는 축구에 익숙해진 한국 대표팀 선수들에게는 옛날 축구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