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축구 울산 HD가 호랑이굴(울산문수구장의 애칭)로 광주FC를 불러들인 10일. 경기 시작을 앞두고 양측 선수단이 소개되는 순서에선 이색 장면이 연출됐다. 홈팬들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아야 하는 홍명보 울산 감독(55)의 이름이 불리자 야유가 쏟아진 것이다.
홍 감독이 지난 3일 대한축구협회를 통해 한국축구대표팀 감독으로 내정됐다는 사실이 공개된 여파다. 홍 감독은 지난 2월 대표팀 감독 부임설이 나올 때마다 선을 그어왔다. 지난달 30일에는 대표팀행에 사실상 거절 의사를 밝혔을 뿐만 아니라 표류하고 있는 대표팀 감독 선임 작업에 대해 협회에 날선 비판을 가했던 터라 갑작스러운 부임 소식에 팬심이 들끓었다.
날선 팬심은 야유가 전부가 아니었다. 팬들은 “정몽규(대한축구협회장) 나가” “홍명보 나가”를 외쳤다. 또 울산 서포터인 ‘처용전사’가 응원하는 관중석에선 ‘피노키홍’ ‘축협위한 MB(홍명보 감독)의 통 큰 수락’ ‘거짓말쟁이 런명보’ ‘축협의 개 MB’ ‘우리가 본 감독 중 최악’ ‘아마노홍’ 등의 문구가 담긴 걸개도 내걸렸다.
이날 경기를 앞두고 “충분히 이해한다. 그분들의 감정이 맞을 것”이라고 팬들의 비판을 각오했던 홍 감독도 씁쓸한 마음을 감추기 힘들었다. 평소 그라운드에서 열정적으로 선수들을 지휘하던 홍 감독은 이날 만큼은 벤치에 앉은 채 경기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평소와 다른 분위기에 흔들린 것은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팬들은 선수들에게는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응원에 나섰지만 경기 내내 무기력한 경기력을 노출했다. 후반 22분에는 교체 투입된 이희균의 날카로운 침투 플레이에 이은 오른발 슛에 선제골을 내줬고, 이 골이 승부를 결정지었다. “들러리가 되지 않겠다”고 강조한 광주 이정효 감독의 바람 그대로였다.
울산은 이날 패배로 광주와 악연을 재확인하게 됐다. 지난 2년간 우승컵을 독차지했던 울산은 거짓말처럼 광주만 만나면 작아지는 가운데 광주전 4연패의 늪에 빠졌다. 내심 울산을 떠나기 전 1위를 되찾고 싶었던 홍 감독의 계산도 틀어졌다. 승점 39점에 멈춘 울산은 라이벌인 포항 스틸러스(승점 41)가 강원FC를 2-0으로 따돌리면서 김천 상무(승점 40)에 이은 3위로 밀려났다. 홍 감독은 “다음 경기(13일 FC서울과 홈경기)도 지휘해야 하지 않을까. 언제까지인지는 아직 모른다. 구단과 상의해봐야 한다”며 “주말 경기까지는 하고 싶은데, 모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