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를 만졌을 때 제 자리에 없어서 부러졌다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도 애들이랑 너무 잘 준비한 대회여서 계속 뛰어야겠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어요.”
고교 축구 최강팀을 가리는 제57회 대통령금배에 킬리안 음바페(레알 마드리드) 닮은 꼴이 등장했다. 경기 안양공고 주장이자 센터백인 표준명이 코뼈 골절 부상에도 투혼을 발휘하며 팀을 토너먼트에 진출시켰다.
안양공고는 22일 인천 부평고와의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경기 막판 금찬혁의 극장 동점 골로 부평고에 다득점에서 앞서 토너먼트 막차를 탔다. 스포트라이트는 금찬혁이 받았지만, 표준명의 몸을 사리지 않는 수비가 없었더라면 불가능한 성과였다. 선수단 전체에 투혼을 불어넣은 건 표준명이다.
표준명은 서울 영등포공고와의 조별리그 1차전에서부터 다쳤다. 공중볼 경합 과정에서 상대 공격수 머리에 코를 부딪치면서 뼈가 부러졌다. 하지만 아파할 새가 없었다. 상대는 디펜딩 챔피언이자 이번 대회 강력한 우승 후보였다.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맞붙을 상대는 금배 최다 우승팀 부평고로 물러설 곳이 없었다. 감독관의 “5번 괜찮아?”라는 말에 말없이 엄지를 치켜들어 보이고는 그라운드로 뛰어 들어갔다.
이후 병원 진단은 코뼈 골절로 수술이 필요하다는 말을 들었다. 순간 팀원들의 얼굴이 눈앞을 스쳐 갔다. 경기에 못 나가면 같이 고생한 팀원들의 고생이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대회가 끝나고 수술을 받기로 했다. 고등학생 신분으로 치르는 마지막 대회인 만큼 후회 없는 경기를 하고 싶었다. 안양공고의 올해 대회 최고 성적은 백운대기 16강. 그 이상에 오르고 싶은 표준명은 조별리그 3경기를 모두 풀타임으로 뛰었다.
자타공인 최고 강점은 어떤 상대를 만나도 주눅 들지 않는 정신력이다. 단점을 꼽아달라는 말에도 “과열된 경기를 치를 때 주장이라서 중심을 잡고 친구들을 잡아줘야 하는데, 내가 흥분해버리는 상황을 고쳐야 할 것 같다”고 할 정도다. 강팀들과 한 조에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느냐는 말에도 “그냥 강한 팀 만나서 자신감 붙여서 올라가는 게 더 좋다. 오히려 강한 팀 나와라하는 심정이었다”고 받아쳤다.
힘든 운동을 왜 하려느냐는 부모님 말씀에도 고집대로 밀어붙였다. 상대 공격수 볼을 뺏는 재미에 안양초등학교 때부터 줄곧 센터백을 봐왔다는 표준명은 이란성 쌍둥이로 같은 팀 왼쪽 사이드백인 표준민과 국가대표가 되는 꿈을 꾼다.
롤모델은 레알 마드리드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세르히오 라모스(세비야)다. 표준명은 “나처럼 키가 크지 않지만 경합에서 다 이겨내는 모습, 투지, 주장으로서 보여준 리더십을 본받고 싶다”면서 “내가 라모스를 보고 희망을 품었듯이, 거꾸로 나를 보고 꿈을 꿀 수 있게 하는 선수가 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