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지(32·임실군청)가 주 종목인 사격 여자 25m 권총 사대에 선 2일 프랑스 샤토루 슈팅센터. 2024 파리 올림픽의 ‘신스틸러’로 불리는 김예지의 인기는 취재진의 관심에서 잘 드러났다. 내·외신 구분 없이 사진 기자들이 김예지가 특유의 시크한 사격 자세로 표적지를 겨누는 장면을 렌즈에 담느라 바쁘기 짝이 없었다.
호흡을 고르며 방아쇠를 당기는 완사(5분 내 5발 사격), 숨돌릴 틈도 없이 표적지 한복판에 구멍 자국을 만드는 급사(7초 후, 3초 내 1발 사격을 반복해 5발 사격)까지 총 4시간여의 경기 시간이 김예지가 주연인 프로그램 쇼처럼 정신없이 흘러갔다.
■전세계 언론이 주목한 김예지의 사격쇼
김예지의 사격쇼는 원치 않았던 완급 조절이 더해지면서 눈길을 붙잡았다. 국제 무대에선 정밀 사격, 국내에선 완사로 불리는 30발이 표적지에 쏟아지는 사이 순위가 완만하게 떨어졌다. 97점(1위)→96점(3위)→97점(6위). 전체 40명 중 20명의 완사가 끝난 순간 290점으로 6위에 안착해 8명이 다투는 결선 진출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김예지와 함께 25m 권총에서 주목받고 있는 양지인(21·한국체대)이 291점(7위)으로 완사를 마치자 김예지의 순위는 14위까지 떨어졌다.
장갑석 사격대표팀 총 감독은 이날 현장을 찾은 신명주 대한사격연맹 회장(명주병원장)에게 “평소라면 296점 안팎은 쏜다”면서도 “우리 선수들의 장기가 후반부 급사라 걱정은 없다”고 귀띔했다.
장 감독이 믿는 구석은 한국 사격이 3년 전 도쿄 올림픽의 부진을 계기로 대대적인 체질 개선에 성공한 영향이다. 국가대표 선발부터 급사로 순위를 가리는 결선 위주로 바꾸다보니 대표팀 모두 급사에 능한 이들로 꾸려졌기 때문이다.
마치 콩 볶는 소리와 함께 시작된 급사는 이들의 예상과 다르게 흘러갔다. 김예지가 완사보다 나은 페이스로 표적지를 채우다 실수를 저질렀다. 급사의 첫 10발은 98점. 순위도 결선 진출 마지노선인 8위로 올랐으나 다음 총탄이 0점 처리됐다.
■급사 달인의 실수, 충격의 0점 처리로 탈락
김예지가 순식간에 탈락 위기로 몰렸다. 김예지는 나머지 19발 중 3발만 9점, 16발을 10점을 쐈지만 한 번의 실수를 극복하지는 못했다. 575점으로 27위. 탈락이 확정됐다. 0점이 아닌 10점을 쐈다면 공동 7위로 결선 진출이었는데, 김예지가 이 종목에서 유력한 금메달 후보라는 점에서 충격적인 결과다. 김예지는 지난 5월 아제르바이잔 바쿠 월드컵에서 25m 권총 신기록(42점)과 함께 우승해 이름을 알렸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자신이 소유한 엑스(X·옛 트위터)에 “(김예지는) 액션영화에 캐스팅돼야 한다. 연기할 필요조차 없다”고 찬사를 보냈던 그 대회다.
당시 김예지는 숨돌릴 틈도 없이 표적지 한복판에 구멍 자국을 만드는 급사에서 신들린 총 솜씨를 보였는데, 이날은 한 발이 0점 처리되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김태호 대한사격연맹 부회장은 “시간이 조금만 넘으면 표적이 닫힌다. 점수가 인식이 안 되는 것”이라며 “김예지 선수가 조금 늦었던 것 같다”고 탄식했다. 김예지는 “나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빨간 불이 켜진 뒤에 3초 안에 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0점 처리가 되는데, 내가 실수를 저질렀다. 팬들을 모두 놀라게 만든 빅 이벤트가 됐다”고 말했다.
■머스크를 올림픽으로 초대했던 김예지 “원치 않는 빅 이벤트가 됐네요”
김예지는 자신이 만든 빅 이벤트가 두 번의 약속을 깬 것이라 아쉬움을 내비쳤다. 첫 약속은 팬들에게 호언장담했던 금메달을 보답하지 못한 것이고, 또 하나의 약속은 머스크 CEO를 이 대회에 공식 초대해놓고 결선에 진출하지 못한 것이다. 김예지는 지난 1일 국제사격연맹의 제안으로 엑스 계정을 만들어 머스크 CEO에게 올림픽 관람을 제안한 바 있다.
김예지는 “트위터(엑스)를 만들어 머스크 CEO에게 (제 경기를) 구경하러 오시라고 했다”면서 “만약 오늘 경기에 오셨다면 너무 놀라셨을 것 같다”고 미안한 마음을 내비쳤다. 그러면서 “내일은 (전체 6위로 결선에 진출한) 양지인 선수를 응원하겠다. 결선에서도 분명히 좋은 성적을 낼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예지는 파리에서 지키지 못한 약속을 4년 뒤 로스앤젤레스(LA) 대회로 미뤘다. 김예지는 “나도 속상하지만 경기를 지켜보는 분들은 깜짝 놀라면서 실망하셨을 것”이라면서 “이번엔 지키지 못했지만 또 약속을 해보려고 한다. 4년 뒤에는 꼭 (금메달을!)”이라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