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치님, 4년 뒤에도 저랑 함께 해주실 거죠?”, “무조건 도전해야지. 그땐 금메달로!”
임애지(25·화순군청)는 4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의 노스 파리 아레나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복싱 여자 54㎏급 준결승전에서 하티세 아크바시(튀르키예)에게 2-3(28-29 30-27 29-28 27-30 29-28)으로 판정패했다. 왼손잡이 아웃복서인 임애지는 이날 자신과 비슷한 유형인 아크바시를 상대로 대등한 경기를 펼쳤으나 판정에서 아쉽게 졌다. 올림픽 복싱 경기는 규정에 따라 동메달 결정전을 따로 열지 않고, 준결승전에서 패한 두 선수에게 모두 메달을 수여한다.
앞서 8강전에서 예니 마르셀라 아리아스 카스타네다(콜롬비아)를 꺾고 동메달을 확보해 둔 임애지는 한국 여자 복싱 최초 ‘메달리스트’라는 타이틀을 획득했다. 한국 복싱엔 12년 만의 값진 메달을 안겼다. 임애지는 2021년 열린 2020 도쿄 대회에서 조기 탈락의 쓴맛을 본 뒤, ‘글러브를 벗어야 하나’ 고민했다. 당시 16강전에서 떨어진 임애지는 한순철 대표팀 코치로부터 “파리 올림픽까지 3년 남았다”는 말을 듣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힘든 운동을 더 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내 마음을 다잡고 지난 3년간 파리를 향해 힘차게 달린 그는 한국 여자 복싱의 역사를 새로 썼다.
도쿄에서 후회를 남겼던 임애지는 3년 뒤 파리에선 홀가분함을 느낀다. 다음이 없을 것만 같았던 그에겐 이제 내일의 ‘희망’이 생겼다. 미소를 머금고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에 들어온 임애지는 “이번 올림픽은 가능성을 본 무대였다. 많은 분의 응원 속에 경기해서 정말 감사했다”며 “한국에 돌아가면 실전처럼 연습을 많이 해서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싶다”고 말했다.
임애지는 한국시간 9일 오전 5시51분 열리는 이 체급 결승전이 끝난 뒤 금메달, 은메달 수상자와 함께 시상대에 오른다.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 방철미(30·북한)와 나란히 시상대에 선다. 방철미도 앞서 열린 8강전에서 창위안(중국)에게 져 동메달을 획득했다. 국제대회에서 여러 차례 만나 안면이 있는 두 선수는 선수촌 웨이트장에서 짤막한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방철미가 먼저 “힘 내라”라는 말을 건넸고, 임애지도 “언니도 힘내세요”라고 답하며 서로를 응원했다. 그는 “결승전에서 보자고 했는데, 둘 다 떨어져 버려서 조금 아쉽다”고 했다.
인터뷰하는 동안 한 코치가 임애지의 손에 감긴 붕대를 풀어주려고 다가왔다. 임애지는 한 코치에게 “4년 뒤 LA 올림픽을 준비하자고 하면 어떨 것 같냐는 질문이 나와서 코치님에게 같이 해줄 거냐고 물어보겠다고 했다”고 웃으며 말했다. 이에 한 코치는 “기회가 된다면 무조건 도전한다. 이번엔 동메달이지만, 그땐 금메달로”라며 선수와 뜻을 함께했다. 2012 런던 대회 남자 라이트급에서 은메달을 땄던 한 코치는 “임애지 선수의 동메달이 결정된 순간, 제가 메달을 딸 때보다 더 기뻤다”며 “다음엔 더 노력해서 좋은 모습 보여드리겠다”고 전했다.
다만 복싱은 2028 LA 올림픽에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임애지는 “만약 제외된다면 받아들이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 가끔은 큰 무대만 봐주시는 것 같아 속상할 때가 있다”며 “지금도 한국 선수들은 작은 대회에서 조금씩 성적을 내고 있다. 올림픽, 아시안게임 외에도 많은 대회가 있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다”고 더 많은 관심이 이어지길 바랐다. 파리에서 희망을 본 임애지와 한국 복싱의 도전은 앞으로도 계속된다. 김호상 복싱 대표팀 감독은 “복싱 붐이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다음 아시안게임 등에서 역사를 만들어 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