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적인 무더위가 그라운드를 녹이고 있다. 2015년 관련 규정 제정 이후 9년 만에 처음으로 프로야구 폭염 취소 경기가 나왔다. 그것도 벌써 3차례다. 2일 울산 LG-롯데전을 시작으로 4일 잠실 두산-키움전과 다시 울산 LG-롯데전이 열리지 못했다. 불볕더위에 탈진과 구토 증상을 호소한 선수도 여럿이다.
모두가 힘든 더위지만, 그럼에도 순위 경쟁은 계속된다. 한여름 무더위는 모든 구단에 위기인 동시에 기회다. 5일 기준 5위 SSG와 최하위 키움의 승차가 불과 5.5경기. 치열한 순위 경쟁에 여름의 중요성은 한층 더 커졌다.
여름은 결국 타자의 계절이다. 시즌 후반으로 치달으며 체력은 이미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는데, 무더위까지 겹치니 투수가 타자를 이겨내기가 쉽지 않다. 지난 시즌 각 구단 평균자책점이 4.14, 그러나 8월 한 달로만 한정하면 4.49까지 올랐다. 올 시즌은 더 심상치 않다. 7월까지 4.87이던 리그 평균자책점이 8월 첫 한 주일 동안 5.99로 치솟았다. 각 구단 ‘여름의 사나이’들에게 걸린 기대가 어느 때보다 크다.
지난해 8월 리그에서 가장 뜨거웠던 타자는 삼성 구자욱이다. 22경기 동안 85타수 35안타에 4홈런을 때렸다. OPS 1.139로 전체 1위를 기록했다. 사구 부상 이탈 이후 선발로 처음 복귀한 지난 3일 구자욱은 3타수 3안타를 때렸다.
두산 김재호는 지난 시즌 여름 내내 불방망이를 휘둘렀다. 6월 타율 0.325, 7월 타율 0.303으로 타격감을 조율하더니 8월에는 월간 리그 1위인 타율 0.435를 기록했다. 9, 10월 더위가 가시면서 타격감도 식어버린 것이 아쉬웠다.
지난 시즌까지 최근 3년으로 범위를 넓히면 한화 노시환, LG 홍창기가 눈에 띈다. 3시즌 통틀어 온도 30도 이상 경기에서 OPS 리그 1, 2위를 기록했다. 노시환이 36경기에서 146타수 46안타에 12홈런으로 OPS 1.021, 홍창기가 43경기에서 164타수 43안타 출루율 0.510에 OPS 1.004를 기록했다.
미국 메이저리그(MLB)에서 활약하며 텍사스 여름 더위에 익숙해진 덕인지 SSG 추신수도 더운 날씨에 특히 강했다. 지난해까지 3년 통산 OPS가 0.819였는데, 30도 이상 경기로 한정하면 0.927로 0.1 이상 기록이 좋았다. 42세 나이의 추신수는 현역 마지막 시즌인 올해 역시 8월 2경기에서 홈런 2개 포함 7타수 4안타를 때리며 뜨거운 여름을 예고하고 있다.
7월 한 달 동안 11홈런을 몰아친 삼성 강민호도 여름이면 더 강해지는 사나이였다. 최근 3년 동안 30도 이상 날씨에서 OPS 0.869로 리그에서 6번째로 기록이 좋았다. 체력 소모가 가장 심한 포수 포지션이라는 걸 감안하면 더 놀라운 기록이다. 그 외 KIA 나성범, 삼성 박병호, KT 황재균, SSG 최정, LG 문보경과 문성주 등이 더위에 강했다.
NC는 박건우의 빈 자리가 아쉽다. 팀 내 최고의 타자인 동시에 여름철 더 강한 타자였다. 지난해 8월 한 달 동안 0.380 고타율로 OPS 1.028을 기록했다. 최근 3년 동안 30도 이상 날씨에서도 타율 0.363, OPS 0.969로 꾸준하게 활약했다.
기대를 건다면 새로 영입한 외국인 투수 에릭 요키시다. 키움에서 활약한 5시즌 통산 30도 이상 날씨에서 12차례 등판해 5승 4패에 평균자책점 3.03으로 준수한 성적을 남겼다. 그 외 키움 아리엘 후라도와 KT 고영표, 롯데 박세웅 등이 더운 날씨에도 꿋꿋하게 잘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