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파리올림픽 배드민턴 혼합복식 은메달리스트인 김원호(25)와 정나은(24)이 6일 프랑스 파리의 코리아하우스에서 기자회견에 나섰다. 대한민국의 메달리스트들이 꿈을 이룬 소감을 한국 미디어 앞에서 다시 한 번 밝히고 크게 축하받는 영광스러운 자리다.
이번 대회에서 배드민턴은 금메달 1개와 은메달 1개를 따냈다. 그러나 은메달리스트인 김원호와 정나은만이 참석했다. 여자단식 금메달리스트인 안세영은 일찌감치 불참 의사를 밝혔다.
안세영은 지난해 항저우 아시안게임 결승전에서 무릎 인대가 파열되는 부상을 입고도 금메달을 따냈고, 이후 재활을 통해 통증을 이기고 올림픽을 준비해 지난 5일 금메달을 따냈다. 경기 직후 인터뷰를 통해 “무릎 부상이 심각했고 그 과정에서 대표팀에 너무 실망했다”며 “더는 대표팀과 함께 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폭탄선언을 했다. 이후 공식 기자회견에서도 한국 대표팀 운영이 융통성 없고 부실하다는 취지의 강한 발언들을 작심하고 쏟아냈다.
그러나 이튿날 메달리스트 기자회견에는 참석하지 않으면서 그 폭탄을 김원호와 정나은이 떠안았다. 은메달 획득의 소감과 열심히 훈련했던 과정, 다음 목표 등에 대한 질문이 이어진 뒤 어쩔 수 없이, 안세영의 발언이 선수단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도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김원호는 한참을 고민한 끝에 “파트가 나눠져 있기 때문에 (안세영의 그런 조짐은) 잘 못 느꼈다. 관련 기사가 많이 나왔기 때문에 선수단 분위기가 좋다고는 말을 못하겠다”며 이날 참석한 데 대해서도 “휴대폰이 있다보니 기사들을 보기 때문에, 축하를 받아야 할 자리인데 (그럴 수 있을까 하는) 우려스러운 마음이 있었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정나은도 깊이 고민하다가 “세영이 얘기는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협회의 관리나 지원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에 대해 묻자 둘은 “이 자리까지 온 것도 우리만의 힘으로 온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력해주시는 분들이 있어 우리는 훈련만 집중했다. 제가 알지 못하는 부분들이 있을 것”이라고 역시 조심스럽게 말했다.
은메달을 축하받아야 하는 자리에서 둘은 한 번도 밝게 웃지 못했고, 뭐라고 말해도 논란이 불씨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말해야 하나 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대한배드민턴협회의 무책임 때문이다.
협회는 5일 안세영의 발언 이후 어떤 공식 대응도 하지 않고 있다. 파리 현지에 협회 주요 관계자들이 전부 와 있으나 연락은 두절이다. 안세영이 불참하면서 김원호-정나은이 어떤 상황에 놓일지 뻔한데도 협회 직원은 단 한 명도 이날 나타나지 않았다. 열심히 노력해서 메달을 딴, 죄 없는 선수 둘만 곤욕을 치렀다.
안세영이 폭로한 쟁점은 협회 주도하에 이뤄지는 대표팀의 선수 관리와 운영 체계가 선수를 보호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중3이던 2017년 12월 대표팀에 처음 선발돼 그동안 지켜봐왔고 최근 무릎을 크게 다친 채로 올림픽을 준비하는 동안 너무도 실망해 폭로한다며, 대표팀의 훈련 방식이 오랜 시간 변화하지 않아 비효율적이고 선수들의 부상 위험이 크며 성적에 따라 복식과 단식 사이에 차별을 느꼈다고 주장했다.
안세영 주장의 핵심은 선수마다 특성이 다르니 개별적으로 맞춤형 훈련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그러나 대부분 종목의 국가대표팀은 하나로 움직이다보니 선수 개인을 위해 달라지기가 어렵다. 자칫 특혜 논란에 빠질 수도 있다. 안세영이 대표팀과 더이상 같이 하지 않고 따로 훈련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도 이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금메달을 딴 선수가 내놓은 말의 무게감이 매우 크다. 협회는 해명할 것은 해명하고 억울한 부분이 있다면 적극 대응해야 하지만 입을 꾹 닫고 있다. 이날 논란이 뻔한 메달리스트 회견장에도 아무 잘못도 없는 선수 둘만 보내 사실상 방치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조사에 들어갔고 정치권의 비난도 빗발치고 있다. 그런데도 김택규 협회장 등 주요 인사가 다 모여 있는 파리 현지의 협회는 미동도 하지 않고 숨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