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사만 가득한 줄 알았던 집안이 갑자기 상갓집이 됐네요.”
6일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대한사격연맹 고위 관계자의 목소리에는 시름이 가득했다. 2024 파리 올림픽 금빛 총성의 여운이 사라지기도 전에 수장이 스스로 물러났다는 비보가 들려왔다.
지난 6월 대한사격연맹 회장 선거에서 당선됐던 신명주 신임 회장이 자신이 병원장으로 있는 명주병원의 임금체불 논란이 일자 회장직을 내려놓은 것이다.
연맹 관계자는 기자와 통화에서 “(파리 올림픽이 열리는 샤토루와 시차로) 새벽께 국내에 있는 회장님으로부터 언론의 취재로 어려움이 생겼다는 연락을 받았다”면서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없어 당혹스러웠는데, 아직 공식적인 통보는 받지 못했지만 회장직을 내려놓으시겠다는 걸로 보인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명주병원은 지난해 5월부터 임금이 체불돼 고용노동부의 내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올림픽 기간인 지난달 26일에는 현장 근로감독도 받았다.
신 회장이 계획보다 파리 올림픽 현장을 방문한 시기가 늦어진 것도 이 영향으로 보인다. 신 회장은 지난 3일 양지인의 25m 권총 금메달을 현장에서 지켜본 뒤 4일 귀국했다. 신 회장은 7일 올림픽 역대 최고 성적(금메달 3개·은메달 3개)을 달성한 선수단을 인천국제공항에서 성대히 환영하기로 했지만 스스로 물러나면서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대한사격연맹은 신 회장의 갑작스러운 사임으로 선수단 포상부터 걱정하게 됐다. 연맹 규정에 따르면 금메달은 선수 5000만원, 코칭스태프 2500만원을 지급하게 되어 있다. 은메달은 선수 3000만원, 코칭스태프 1500만원이다. 선수들에게 지급되어야 하는 포상금만 2억 7000만원(은메달 1개는 복식이라 2명)에 달한다.
연맹의 2023년 경영공시에 따르면 2024년 예산에서 포상금으로 쓸 수 있는 예비비는 1억원이었다. 3년 전 도쿄 올림픽에서 은메달 1개에 그친 부분을 감안한 것으로 보이지만, 이번 대회 예상을 뛰어넘는 성적으로 기존 예산을 전용하거나 부족한 금액을 외부에서 끌어와야 하는 상황이다.
연맹 관계자는 “회장님이 외부에서 후원금을 끌어오자는 아이디어를 주셨다. 귀국하면 곧바로 그 미팅부터 들어갈 계획이었는데, 모두 꼬였다”고 탄식했다.
또 연맹은 신 회장이 공식 사임하면 빠르게 후임을 찾아야 하는 부담감도 안게 됐다. 2023년 4월 개정된 연맹 정관 제21조 4항에 따르면 회장이 궐위됐을 때 잔여임기가 1년 이상인 경우 60일 이내에 회장을 새로 선출해야 한다. 20여 년간 사격의 든든한 키다리 아저씨였던 한화가 물러난 위기에도 역대 최고 성적을 썼던 한국 사격이 갑작스러운 위기에 놓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