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획득하는 시즌의 선수들은 대개 두 갈래로 나눠진다.
이른바 ‘FA 로이드’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좋은 성적을 내거나, FA에 대한 부담감으로 평소 실력보다 부진하곤 한다.
KT 엄상백(28)은 전자에 속한다.
엄상백은 1996년생으로 젊은 투수다. 엄상백이 FA 자격 획득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벌써’라며 놀라운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덕수고를 졸업한 뒤 2015년 1차 지명으로 KT 유니폼을 입은 엄상백은 입단할 때부터 팀의 기대를 한 몸에 받은 유망주였다.
그러나 쉽게 제 자리를 잡지 못했다. 구위는 좋지만 제구가 잘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데뷔 첫해에는 선발로 뛰었다가 두 번째 해에는 시즌 초반부터 불펜으로 보직을 옮겼다. 그러다 2019시즌을 마치고는 상무에 입대했고 이 시간들이 엄상백에게는 야구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군입대 첫 해 10승4패 평균자책 1.68을 기록하는 등 투수로서 한 층 성장하는 시간을 가졌다.
제대 후 첫해인 2021시즌 다시 선발로 돌아와 10경기를 뛰면서 4승1패로 가능성을 보였고 2022년에는 11승(2패)를 올리며 데뷔 후 처음으로 두 자릿수 승수를 올렸다. 평균자책도 2점대(2.95)로 커리어하이로 시즌을 마쳤다.
2023년에는 20경기 7승6패로 직전해보다는 주춤했지만 선발 로테이션을 지켰다.
올시즌에는 전반기 17경기 7승7패 평균자책 5.18로 기복있는 피칭을 선보이다가 후반기 들어서 승수를 쌓아나갔다. 5경기에서 3승을 기록했다. 지난 7일 KIA전에서 6이닝 무실점으로 팀의 승리를 이끌었고 데뷔 후 두번째 10승 달성에 성공했다. KT 선발진 중 엄상백이 유일하게 10승 고지에 올랐다. 웨스 벤자민도 8승(6패), 윌리엄 쿠에바스도 5승(10패)에 불과하다.
올시즌을 마치고 FA 자격을 획득하는 선수 중 선발 투수 자원은 엄상백과 LG 최원태 등이다. 최원태는 16경기 6승5패 평균자책 4.97을 기록 중이다.
정작 엄상백은 덤덤하다. 그는 7일 KIA전을 마친 후 “10승은 아직 등판 기회가 많이 남아서 의식하지 않았다. 1회부터 타자들이 대량 득점을 해준 덕분에 쉽게 경기를 풀어나갈 수 있었다”라고 했다.
KIA에서 가장 까다로운 타자인 김도영을 5회 1사 만루 위기에서 헛스윙 삼진을 유도하는 등 공략에 성공했던 엄상백은 “김도영 선수가 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데 나와는 상대성이 작용하는 것 같다. 내 피칭만 하자고 마음 먹는데 상대적으로 강한 결과값이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직전 경기인 1일 한화전에서 5이닝 10실점으로 우려를 사기도 했던 엄상백은 “이전 경기 부진은 날씨가 체력적인 부분에까지 영향을 미친 것 같다”며 “그래도 후반기 들어서는 그 경기 제외하고 ABS에도 적응해서 그런지 좋은 결과를 보여줬다”고 자평했다.
엄상백은 “승은 오늘로 두 자릿수 승수를 달성했기에 만족한다. 남은 등판은 보너스 게임이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선발 투수로서 각 큰 변화구에 대한 욕심이 아직 있다. 우규민 선배가 커브 잘 던지시니 많이 여쭤보고 배우려고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