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올림픽이 한창인 요즘, 드라마가 방송될 법한 오후 9~10시 TV는 모두 올림픽으로 도배돼있다. 방송가에는 뉴스나 스포츠 중계, 일부 시사 프로그램을 제외한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에 ‘방학 기간’이 생긴 셈인데 이를 굉장히 아쉬워하는 작품도 있다.
바로 SBS 금토극 ‘굿파트너’다. 지난달 12일 처음 방송된 ‘굿파트너’는 닐슨 코리아 전국 가구 기준 집계(이하 동일기준)으로 첫 회 7.8%의 시청률로 시작했지만 3회 만에 10%를 돌파하고, 20일 자체 최고수치인 13.7%를 찍었다. 한창 기세를 끌어올려야 할 시기 파리올림픽을 만났다. 약 3주를 허송하고 어쩔 수 없이 오는 16일부터 시청자를 다시 만난다.
하지만 작품을 기다리는 시청자들의 열기는 꽤 뜨겁다. 대부분 재방송이나 단막극을 방송하는 지금 상황에서 지난달 29일부터 지난 4일 집계된 주간시청률에서도 ‘굿파트너’ 재방송이 1위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비록 1.7%라는 적은 수치지만 같은 기간 지상파 드라마 중에서는 가장 높은 수치라는 것이 유의미했다. 이는 제작진에게 방송 재개 후 희망을 주는 결과다.
이 모든 작품의 인기 중심에는 배우 장나라가 있다. 그는 이 작품에서 대형 법무법인 대정의 이혼 전문변호사 차은경을 연기한다. 모든 일과가 효율성을 중심으로 짜여있고, 인간관계 역시 효율성을 중시한다. 드라마는 그런 그가 공감을 중시하는 신입 변호사 한유리(남지현)를 만나 변화는 과정을 다룬다.
장나라가 연기하는 차은경은 겉으로 봤을 때는 단선적으로 보이지만 속을 뜯어보면 훨씬 복잡한 캐릭터다. “변호사한테는 시간이 생명, 항상 체크” “우린 주어진 상황에서 의뢰인에게 최대한 이익을 준 것”이라며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자세를 취하지만 속은 또 다르다.
그는 내과의사인 김지상(지승현)과 나무랄 데 없는 듯한 결혼생활을 하는 것 같지만 김지상이 은경의 회사 비서와 불륜을 저지르고 이혼 소송에 돌입하자 180도 바뀐다. “남편이 바람피우는 건 와이프는 무조건 알아. 모든 감각으로” “바람피워놓고 감당 못 하니까 무조건 잡아뗀다”면서 생전 쓰지 않던 감정을 대거 소모하며 남편에게 복수를 다짐한다.
이러한 차은경의 내면에는 사실 지금의 상태가 되기 전 다소 귀여웠던 과거가 있었고, 그가 스스로를 몰아세울 수밖에 없었던 원동력에는 가족에 대한 애착이 있었다. 그는 남편과의 이혼으로 자신의 세계가 무너지는 경험을 했고, 자신이 세워왔던 이성적인 변호사로서의 판단기준까지 무너뜨린다.
역으로 이러한 그의 변화는 보는 사람들에게 재미를 안긴다. 이는 귀여운 ‘아이돌’이었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차가운’ 역할도 잘 어울려지는 장나라의 행보와 닮아있다.
장나라는 누구나 다 알다시피 2000년대 초반을 신드롬으로 수놓았던 배우였다. 가수로서 데뷔뿐 아니라 드라마, 예능, 광고 등에서 큰 인기를 불러일으켰다. 동안의 이미지로 대표되는 귀여움과 이를 뒤받치는 연기력과 예능감이 있었고, 누구나 뒤를 돌아볼 만한 가창력과 음색이 있었다.
그는 이러한 이미지를 중국 시장에도 적용해 큰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2010년대 중반 밀어닥친 ‘한한령(限韓令·한류금지)’의 여파로 국내 활동에 주력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장나라의 매체 속 이미지는 다층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마냥 귀엽거나 천방지축인 인물이 아닌 이미 30대 중반에 접어든 당시에 나이에 맞게 현실의 제약을 받고 시련에 부딪치는 인물을 연기하기 시작한 것이다.
공교육의 현장에서 그 한계를 고민하는 ‘학교 2013’ 정인재를 비롯해, 경찰대 출신 경무관을 연기한 ‘너를 기억해’ 차지안, ‘황후의 품격’과 ‘VIP’ ‘나의 해피엔드’ 등의 작품에서는 시련을 도맡았다. ‘VIP’와 ‘나의 해피엔드’ 그리고 이번 ‘굿파트너’에서는 공통적으로 남편의 배신을 당했다는 설정도 똑같다.
이렇게 시련을 당하는 30~40대 여성을 연기하면서 장나라의 이미지도 차분해졌고, 이번 차은경처럼 차가운 인물도 꽤 어울리는 변신이 가능했다. 밝은 이미지가 주된 가수나 예능의 등장을 줄인 것도 배우로서의 장나라가 조금 더 깊어지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사람은 누구나 성장하고 변화한다. 하지만 장나라처럼 그 과정이 길고 확실한 경우도 많지 않다. 만인의 선망을 받고 귀여움을 받던 ‘똘망똘망한 숙녀’는 어느샌가 차가운 눈빛으로 상대를 응시하는 커리어 우먼이 돼 있다. 이런 변신을 긴 시간 보는 것이 우리가 배우를 지켜보는 보람이자 기쁨이다. 차갑게, 장나라는 살아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