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더 인플루언서’
콘텐츠 질보다 ‘수치’ 서바이벌 초점…제작진 치밀한 설계 돋보여
‘어그로(Aggro)’는 요즘 온라인상에서 게임을 시작으로 광범위하게 쓰이는 말이다. 영어단어 ‘애그러베이션(Aggravation)’의 속어로 도발, 타인의 공격적인 성향을 이끌어내는 행위를 말한다. ‘어그로를 잘 끈다’는 의미는 부정적인 의미가 포함돼 ‘타인의 관심이나 주의를 끈다’는 뜻으로 쓰일 수 있다.
넷플릭스 ‘더 인플루언서’는 인플루언서라 칭해지는 온라인 영향력자들이 겨루는 대회다. 총 5단계의 과정을 거쳐 최초 77인의 참가자에서 1인으로 추려진 우승자가 상금 3억원을 취한다.
처음 이 프로그램이 기획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들었던 가장 큰 궁금증은 그 ‘어그로’를 어떻게 수치화할 수 있느냐였다. 단순히 그 잣대를 ‘구독자수’ ‘팔로워수’로만 판단한다면 참가자들의 경력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경쟁을 하는 방법에 있어서도 모두의 플랫폼이나 소재가 달랐기에 이를 같은 기준에 놓을 수 있을는지가 관건이었다.
과거 MBC에서 ‘마이 리틀 텔레비전’으로 비슷한 형태의 ‘1인 방송’ 콘텐츠를 선보였던 이재석PD의 사유는 상당히 깊었다. 그는 이런저런 다양한 기준은 혼란만 가중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단순하게 이 ‘어그로’를 놓고 승부를 벌이기로 작정했다.
77인의 참가자는 1라운드 ‘좋아요 싫어요 투표’와 2라운드 라이브 방송, 3라운드 피드 사진 촬영 등 현재 공개된 3가지 과제를 통해 4회까지 총 14명으로 추려졌다. 처음 77인의 총 팔로워수는 각자의 지분에 따라 3억원을 차등해 나누는 형태로 지급됐으며, 게임을 통해 이기는 사람이 지는 사람의 상금을 모두 가져간다.
제작진이 이 ‘어그로’를 중점에 둔다는 모습은 여러 과정에서 목격된다. 첫 라운드에서 보통 ‘좋아요’는 선호하고 ‘싫어요’는 꺼릴 수 있지만, 제작진은 ‘싫어요’ 역시 관심의 일부라는 사실을 숨겨놓고 이 두 투표의 합산 수치로 순위를 가렸다. 그리고 라이브 방송에 역시 30명 중 1시간 동안 5명의 합격자, 탈락자를 정해놓고, 후반 1시간 동안 나머지 20명을 5분 단위로 한 명씩 붙이고 떨어뜨리며 긴장감을 배가했다.
이런 상황에서 출연자들은 점점 이 서바이벌이 방송의 질이나 철학, 내용이 핵심이 아니라 단순히 시선을 끌어모으는 일이 ‘인플루언서’ 생존수단임을 깨닫게 된다. 특히 스트리머이자 연출자인 진용진이 이 사실을 따로 깨우치며 적용해가는 과정에 주목하며 그의 분량을 크게 잡는다. 진용진은 피드 사진에서도 내용보다는 액정에 금이 가는 효과를 주면서 보는 사람이 1차원적 시선을 붙잡는 데 노력한다.
물론 콘텐츠의 깊이나 질, 정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들에게 이 서바이벌의 교훈은 다소 허탈할 수 있다. 하지만 기억하자. 4000억원 규모의 이 인플루언서 마케팅 시장은 그런 깊이에 주목하지 않는다. 구독자수, 팔로워수, 시청자 수치만이 모두를 재단할 뿐이다.
따라서 이를 미리 알아챈 제작진의 통찰력이 그 어떤 인플루언서의 ‘어그로’보다 높을 수 있다. 제작진은 치밀한 설계와 운용을 통해 가장 큰 ‘어그로꾼’은 자신들이라는 사실을 과시한다. 어그로는 무엇이고, 어떻게 끌어야 하는가. ‘더 인플루언서’는 그 좋은 교재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