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오후 10시 KBS1 ‘시사기획창’은 ‘오키나와 아리랑’편이 방송된다. 어떤 이에게는 ‘?’를, 또 어떤 이에게는 ‘!’를 자아낼 이야기가 이번 다큐멘터리의 주제다.
한국이라고는 와본 적 없는 오키나와 현지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어디서 아리랑을 배웠고, 왜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걸까?
오키나와에서 비행기로 한참을 더 내려간 남국의 섬 미야코지마. 이곳에는 ‘아리랑가’라는 곳이 있다. ‘가’는 물이 샘솟는 곳이라는 뜻인데, 보통 우물을 뜻하기도 한다.
왜 아리랑이라는 말이 지명에 붙었을까? 태평양 전쟁 말기 본토수호를 외치며 대규모 병력을 오키나와와 인근 도서에 집결시켰던 일본군은 이를 지원하기 위해 한반도에서 대규모 인원을 징발해 군속으로 편성한다.
그중 일부가 미야코지마에 와 동굴 포대 등을 만드는 데 동원됐다. 그리고 물이 나는 곳 근처에서 숙영을 하며 저녁이면 물가에 앉아 ‘아리랑’을 불렀다는 데서 ‘아리랑’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마을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또 얼마 떨어지지 않은 ‘이라부 가’는 조선군속들이 아리랑을 부르며 판 우물이라는 증언도 이어진다. 아리랑가에서 일하던 조선인들을 봤던 할아버지, 자기네 밭에 우물을 파며 아리랑을 부르는 걸 들었다는 할머니...이들은 모두 ‘아리랑’을 부를 줄 안다. ‘아리랑 고개’도 오키나와 옆 아카지마에 있다.
미야코지마의 요나하 할아버지는 소 꼴을 베러 다니다 ‘낯선 누나’들을 만났다.
‘고추’를 줄 수 있냐며 말을 걸어왔던 이들, 일본군 위안부들이었다. 이 누나들은 일본군이 연 ‘군기제’에서 아리랑을 부르며 춤을 췄다.
“아리랑 노래를 부르면서 춤을 춘 일만 있었던 게 아니라, 아리랑이 유행한 것은 마을 누나들과 함께 빨래하면서 교류했기 때문이에요. 아리랑을 부르면서 어울렸던 마을 누나들도 한 명도 남지 않아요. 다들 나이가 드셔서 돌아가셨어요.”
오키나와의 옛 이름 류큐 왕국이 일본에 완전히 복속된 것은 1879년이다. 한일병합조약 불과 30여 년 전 일본의 식민지가 됐다. 그리고 태평양 전쟁 말기, 오키나와 사람들은 또 다른 식민지인으로 전쟁의 참화에 휘말렸고 본토를 수호한다는 명분 아래 전투에 내몰려 섬 주민의 30%가 넘는 약 17만 명의 주민이 숨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런 처지의 오키나와 사람들에게 먼 이국땅으로 끌려와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는 일을 하던 조선 사람들이 부르는 ‘아리랑’은 더 사무치게 들렸는지도 모른다.
“한국의 한. 오키나와의 아주 깊은 슬픔. 일본어로는 채 번역이 될 수 없는, 그렇지만 가슴 어딘가 응어리처럼 남아 있는 그런 슬픔. 이게 소리가 돼서 기억의 아리랑을 부르는 거죠(홍윤신 오키나와대 교수)”
KBS는 2010년 다큐멘터리 제작과정에서 위안부 등을 접촉한 이들이 아리랑을 부른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리고 2017년 ‘특파원 현장 보고’를 통해 ‘징용의 한 서린 오키나와 아리랑’의 존재를 알렸다. 그리고 2024년, 아리랑을 부를 수 있던 그 분들의 존재를 제대로 기록한 장편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 위해 시사기획 창은 뜨거운 남국으로 다시 떠났다.
‘오키나와 아리랑’은 기록을 위한 다큐멘터리다. 과거 KBS 카메라 앞에서 ‘아리랑’을 부르셨던 분들 중에는 시간이 흘러 이미 돌아가신 분도 계시고, 다시 한 번 힘을 내거나 새롭게 카메라 앞에 선 분들도 계신다. 세상을 떠난 이들의 명복을 빌며, 이미 90살이 넘기신 ‘아리랑’ 증언자분들의 건강을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