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에서 좌완 선발의 가치는 여전히 높다. 빠른 구속에 낙차 큰 포크볼까지 겸비했다면 더 귀하다. 키움이 전체 1순위 신인으로 지명한 덕수고 정현우(18)가 그렇다. 최고 구속 152㎞ 빠른공에 ‘위닝샷’으로 포크볼을 던질 줄 안다. 당장 프로에서 어느 정도 통할지는 아직 지켜봐야 하겠지만 가진 조건은 확실히 매력적이다. 키움이 156㎞ 파이어볼러 전주고 정우주를 과감하게 포기할 수 있었던 것도 그만큼 정현우를 높게 평가했기 때문이다.
정현우는 11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린 2025 KBO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 지명을 받았다. 지명 후 취재진과 만난 정현우는 “가장 지명받고 싶은 팀이었다. 경기도 많이 챙겨보고, 좋아하는 팀이다. 지명을 받아 너무 좋다”고 소감을 전했다. 정현우는 “겨울 동안 완벽하게 준비를 해서 내년에 바로 1군 무대에서 선발 투수로 뛰고 싶다”고 했다.
1순위 답게 목표는 확실하고 구체적이었다. 정현우는 “데뷔전 무실점 선발승을 해보고 싶다. 그다음은 시즌 10승을 하고 싶다”고 했다. ‘데뷔전 몇이닝 무실점이냐’고 했더니 5이닝이라고 했다. 무실점 목표와 비교해 이닝 목표는 좀 소박하지 않으냐고 다시 물었더니 정현우는 쑥스럽다는 듯 웃었다.
키움은 신인 선수들이 가장 원하는 팀 중 하나다. 상대적으로 어린 선수들을 가장 적극적으로 기용하는 팀이다. 하지만 그 사이 경쟁이 또 치열하다. 지난해 드래프트 1라운드 9순위로 입단한 키움 김윤하가 올 시즌 선발로 10차례 등판하는 등 이미 66이닝을 소화했다. 정현우가 목표대로 선발 로테이션에 진입하기 위해 경쟁해야 할 동료들이 적지 않다. 정현우는 “일단 왼손 투수라는 장점이 있기 때문에 더 완벽하게 준비를 한다면 내년 시즌 좋은 결과가 있을 것 같다”고 자신감을 표시했다.
정현우는 이날 지명을 받고 ‘롤 모델’로 LA다저스 클레이튼 커쇼를 꼽았다. 커쇼는 메이저리그(MLB) 좌완 중에서도 가장 위력적인 커브와 슬라이더를 던진다. 정현우는 커쇼처럼 커브와 슬라이더 위력을 낼 수 있다면 훨씬 더 좋은 투수가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그래도 가장 자신 있는 공은 포크볼이다. 당장 프로에서도 포크볼로 스트라이크를 잡을 자신이 있고, 결정구로도 쓸 자신도 있다고 했다. 좋아하는 포크볼러로는 올 시즌 MLB에 입성한 이마나가 쇼타(시카고 컵스)를 꼽았다. 정현우와 같은 좌완 포크볼러다. 이번 시즌 기대 이상으로 맹활약하며 신인왕 후보로 거론된다. 현지 매체들은 이마나가의 성공 요인 중 하나로 희소한 ‘좌완 포크볼러’라는 점을 꼽았다. 좌완과 포크볼이 완성도 높게 조합만 된다면 그만큼 위력적이다. 정현우는 처음에 우완 야마모토 요시노부(LA다저스)를 언급했다가 “당황해서 실수했다. 이마나가로 해달라”고 웃었다.
고형욱 키움 단장은 어느 순간부터 정현우와 정우주를 놓고 저울질하는 걸 멈췄다. 확신을 가지고 정현우를 선택했다. 고 단장은 “좌완이 152㎞를 던진다면, 우완 156㎞와 비교해도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현우가 제대로 프로에 안착한다면 키움은 돌아올 안우진 등과 함께 좌·우로 젊고 위력적인 선발진을 갖출 수 있다. 아직은 가정과 기대에 불과하지만, 그게 키움이 기대하는 최상의 시나리오인 것도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