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축구 김판곤 울산 HD 감독(55)의 작심 발언이 화제다. 정제되지 않은 채 나온 발언은 뒷걸음질하는 대한축구협회 행정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가득했지만, 홍명보 축구대표팀 감독을 감쌌다는 오해도 불렀다.
김 감독은 지난 27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K리그1 32라운드 대전 하나시티즌과 원정 경기에서 1-0으로 승리한 뒤 “아시안컵을 마치고 축구협회 발언을 보면 이번 대표팀 감독을 영입할 땐 오합지졸이 된 팀을 누가 수습할지, 아래위 없고 선후배가 없어진 상황에서 누가 원팀을 만들지를 찾는 것 같았다”면서 “‘이런 목적을 갖고, 이렇게 찾는다’고 국민과 미디어를 설득만 잘했다면 이런 사태는 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감독이 홍 감독 선임의 공정성 논란과 관련해 대해 입을 연 것은 이날이 처음이다. 그는 2018년 1월 국가대표 감독선임위원장으로 선임돼 2022년 1월 말레이시아 축구대표팀 감독으로 옮겨갈 때까지 협회에서 활동했다. 입장이 조심스러워야 한다. 더구나 홍 감독이 대표팀에 부임하면서 공석이 된 울산의 후임 사령탑이다. 특수한 상황까지 겹쳤다.
그럼에도 김 감독이 이번 사태에 뛰어든 것은 악화일로인 협회 행정에 대한 한탄으로 풀이된다. 특히 대표팀 감독을 선임하는 독립 기구인 국가대표 전력강화위원회는 본인이 활동했던 국가대표 감독선임위원회의 후신이기도 하다.
김 감독은 “전력강화위원회 내에서조차 방향성이 되지 않아 누구는 한국인을, 누구는 외국인을 뽑아야 한다고 서로 다른 의견이 나온 그 부분이 안타깝다. 간단한 문제에서 오해가 시작됐다”고 탄식했다.
김 감독은 전력강화위원회가 표류한 원인을 협회의 부실한 행정에서 찾았다. 그는 “전력강화위원회와 위원장에게 대표팀 운영과 감독 선임·평가 등 모든 권한을 줬을 때 어떤 결과가 나왔나. 가장 강력한 대표팀에서 가장 좋은 성적이 나오고, 모두 같은 철학과 시스템에서 공정하게 모두가 공감할 수 있지 않았나”라며 “누가 어느 날 왜 그런 권한을 빼앗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감독선임위원장에서 물러나기 직전 협회 정관이 바뀌면서 모든 권한을 잃고 고문 역할에 머물렀던 이력이 있다. 김 감독은 “협회 내부에서 누가 왜 이런 결정을 해서 이렇게 대표팀을 어렵게 만들었는지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더불어 김 감독은 홍 감독이 눈앞으로 다가온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예선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지길 바라는 마음도 남겼다. 그는 “벌써 두 경기를 치렀고 다음 두 경기가 내일모레”라면서 “이런 것에 에너지를 쏟아야지 감독 면박을 주고 힘을 빼고 팀을 와해시킬 때가 아니다. 월드컵을 못 나가면 누가 책임질 것인가”라고 말했다.
김 감독의 발언은 홍 감독을 지지하는 것으로 읽힐 수도 있지만 한국 축구의 일원으로 안타까운 현실에 대한 개탄에 더욱 가까웠다. 이미 홍 감독 체제로 월드컵 본선 티켓 경쟁에 돌입한 상황에서 또 다른 혼란을 불러일으키면 안 된다는 현실 인식이기도 하다.
여론의 거센 비판을 기꺼이 감수했지만 김 감독의 발언이 이번 사태를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다. 당장 문화체육관광부가 10월2일 홍 감독 선임과 관련해 중간 감사 결과를 발표하고, 22일에는 국정감사가 예고돼 있다. 그야말로 첩첩산중, 한국 축구는 겨울처럼 시린 10월을 눈앞에 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