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굿파트너’를 마친 배우 장나라에게 모두들 궁금해한다. ‘동안’ 이미지로 사랑받았던 그가 어떻게 그렇게 차가워질 수 있냐고. 또는 변호사 역할을 어떻게 단련했냐고. 그리고 결혼을 막 한 입장에서 이혼 이야기가 그렇게 많이 나오는 작품을 할 수 있냐고.
직접 만난 장나라는 배시시 웃으며 “일은 일이잖아요”라고 한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드는 느낌이다. 그는 ‘연기’하는 일이 직업인 배우였지. 네모의 프레임 안에서 그는 표독스럽고 냉정하고 또는 열정적이지만 실제 인간 장나라와 배역 차은경은 다르다. 20년의 연기생활은 이렇게 자연스러운 ‘분리’의 미덕을 장나라에게 일러줬다.
장나라는 최근 막을 내린 SBS 드라마 ‘굿파트너’에서 법무법인 대정의 이혼전담 변호사 차은경 역을 소화했다. 파리올림픽으로 편성이 3주 정도 비고, 또 한 번 이혼을 겪는 주인공으로 등장했지만, 대중의 열기는 대단했다. 닐슨 코리아 집계로 수도권 가구 시청률은 최고 18% 후반까지 뛰었다.
“제 상상보다 더 많이 사랑해주셨어요. 행복하고 감사한 마음이 큽니다. 촬영 끝나고 그래서 조금 더 행복하게 쉴 수 있었어요. 대본 자체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았고, 주요 캐릭터의 모습이 보는 재미를 드렸던 것 같아요.”
호혜·평등의 원칙에 따라 수임료를 준 의뢰인에게 승리를 돌려준다는 원칙으로 차은경은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변호를 이어간다. 하지만 막상 등잔 밑이 어두웠던 남편 김지상(지승현)의 불륜에 그의 세계는 무너지고, 딸 재희(유나)와의 관계도 재설정 과정을 거치며 그는 크게 성장한다. ‘굿파트너’가 한유리 변호사(남지현)에게는 신념이 굳어지는 여정을 다뤘다면, 차은경 변호사에게는 신념이 유연해지는 여정이었다.
“제가 차은경을 만드는 과정에 있어서는 배우 남지현이 중심에 있었어요. 결혼하고 첫 작품이고, ‘차가운 도시 변호사’여서 기뻤거든요. 그런데 대본연습을 할 때 남지현이 너무 건강하고 우직한 나무 기둥 같은 연기를 했어요. 마침 제가 최근에 연기에 대해 고민이 많았거든요. 그래서 한유리 캐릭터를 기준으로 놓고 정반대의 톤과 매너를 택했죠. 어떻게 하면 한유리를 화나게 ‘킹받게’ 할 수 있을까가 초점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무채색에 채도가 낮은 한유리의 의상에 비해 차은경의 의상은 엣지가 있었고, 머리스타일도 귀 뒤로 넘긴 한유리에 비해 차은경은 똑단발이었다. 변호사를 공부하는 데는 교본이 필요 없었다. 실제 변호사였던 최유나 작가의 대본이 교과서였으며, 그에게 하는 전화가 상담이었다. 결혼의 끝을 이야기하는 결혼 시작점에 있는 배우. 장나라의 대답은 약간 맥이 빠졌다.
“제 결혼생활이나 결혼관에 별로 대입하지 않았어요. 저는 연기를 할 때의 저와 생활할 때의 제가 완전히 분리돼야 연기가 수월하거든요. 삶에 있어 갈등이 있거나 우울함이 있으면 집중이 잘 안 돼요. 집이 어렵고, 부모님이 아프시고, 갈등을 겪었다고 해서 그 역할을 잘 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이번에는 그 ‘분리’에 있어 90% 이상 성공한 것 같습니다.”
오히려 평소 다른 사람들에게 싫은 소리는 웬만하면 내지 않는 입장에서 차은경 캐릭터는 장나라에게 사이다를 치사량까지 마신 통쾌함을 줬다. 쌍둥이 아빠의 외도 그리고 자신의 자녀가 아닌 아들의 양육권을 얻으려는 아버지의 에피소드에는 마음이 움직였지만, 최유나 작가는 ‘실제는 더 심하다’고 이야기해줬다. 결국 장나라는 차은경의 막바지 대사를 소개해줬다.
“이혼이나 비혼이나 선택일 뿐이고, 중요한 것은 그 선택에 대한 노력이라는 대사가 있어요. 안 되면 또 다른 선택을 하면 된다는 말씀인 것 같아요. 그게 맞는 것 같죠. 무언가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지만, 잘못됐다면 과감하게 다른 선택을 하는 것도 용기인 것 같습니다. 별로 영향을 안 받았다고 말씀드렸지만, 제 이혼관은 이렇게 영향을 받았다고 말씀드릴 수도 있을 것 같네요.”
결국 ‘굿파트너’는 굿파트너인지 알았던 남편과의 결별을 통해 한유리라는 굿파트너를 얻는 차은경의 이야기였다. 그런 의미로 장나라의 ‘굿파트너’는 단연 지금의 남편이다. 그는 정하철 촬영감독과 2022년 결혼했다. 남편은 고민하던 장나라에게 ‘굿파트너’를 추천해줬고, 그가 역할과 완벽하게 분리될 수 있도록 친근한 친구가 됐다. 여전히 인터뷰장에서는 그의 아버지 배우 주호성의 모습도 볼 수 있었지만, 장나라는 아버지와의 분리도 이미 수월하게 된 상태다.
“생활에서 보면 저희 남편이 굿파트너죠. 아버지는 파트너라기보다는 아빠의 인생에서 제가 파생된 느낌이거든요. ‘굿파트너’라고 하면 남편이 제일 먼저 떠오릅니다. 이번에 엄청난 기쁨 중 하나가 아버지가 칭찬에 인색하신데 메신저로 ‘네가 나보다 잘한다’고 해주셨어요. 사실 연기를 꿈꿀 때부터 아버지를 이기는 게 목표였는데 말씀이 사실이 아닐지언정 정말 뿌듯하고, 앞으로 나아갈 힘이 됐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까지 우리가 생각하는 ‘동안미녀’ 장나라의 이미지와 앞으로의 장나라를 우리는 잘 분리해내면 좋겠다. 그리고 장나라 역시 지금까지의 연기와 앞으로 꾸려갈 새로운 장나라, 이를테면 ‘스릴러의 장나라’ 이미지를 잘 분리해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