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번째 공은 타이밍을 뺐을 때 주로 쓰는 체인지업이었다. 그러나 버리듯 유인구로만 활용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2점차 리드였지만 구원투수로 등판해 첫 타자 오재일에게 안타를 맞으며 무사 1·3루. 곧바로 볼카운트 2-0로 몰린 탓에 스트라이크를 잡아야 하는 부담이 있었다.
체인지업은 자칫 실투로 연결되면 대형 타구로 돌아올 수 있는, ‘양날의 검’이다. 더구나 SSG 김광현은 각이 크게 흘러가는 궤적을 그리는 서클체인지업 그립이 아닌 검지와 중지를 벌려 잡는 스플리터형 체인지업을 던진다. 패스트볼 타이밍에 걸릴 위험 부담이 살짝 더 높은 편이다.
그러나 김광현은 KT 로하스와 승부에서 체인지업을 던져 아팠던 기억이 없었다. 올시즌 맞대결 성적은 12타석 10타수 무안타에 삼진만 6개. 최근 만남이던 지난 22일 수원 경기에서는 6이닝 1안타 4볼넷 무실점으로 KT 타선을 꽁꽁 묶은 가운데 로하스도 3타석 2안타 무안타로 제압했다.
좌완 김광현은 그날도 우타석에 들어선 로하스를 상대로 체인지업 2개를 던졌는데 두 차례 모두 의도대로 타이밍을 빼앗았다. 첫 타석에서는 바깥쪽 보더라인에 걸리는 체인지업으로 스트라이크를 더했고, 2번째 타석에서는 가장 높은 스트라이크존에 살짝 걸치는 체인지업으로 루킹 삼진을 잡았다. 두 차례 모두 로하스의 방망이는 나오지 않았다.
1일 KT와 SSG의 5위 결정전에서 나온 ‘결정적인 한방’은 그래서 확률적으로는 기대하기 어려운 장면이었다. 그러나 가을야구에서는 이따금 나오는 공 하나의 ‘이변’이 너무도 큰 결과로 연결된다. 이날도 이 장면의 공 1개로 경기 전부가 결정돼 버렸다.
패스트볼 2개를 볼로 그냥 흘려보낸 로하스는 구종을 노리지 않았다고 했다. 경기 뒤 인터뷰에서 코스만 보고 타격을 할 요량이었다고 했다.
볼카운트 2-0이었기 때문에 한복판에 가까운 코스를 예상하고 100% 자기 스윙을 할 만도 했다.
그런데 실제 그런 공이 들어왔다. 김광현의 체인지업은 우타자 바깥쪽을 타깃으로 비행하는 듯했지만 중간 높이의 가운데 가까운 쪽으로 흘러 들어가며 방망이 중심에 그대로 걸렸다. 125m를 비행한 좌중간 역전 결승 3점홈런. KBO리그 사상 최초의 5위 결정전 기억은 이 장면이 화두로 남게 됐다. 선발 등판 뒤 이틀만 쉬고 김광현이 셋업맨으로 자원 등판한 배경 등이 덩달아 이날 경기의 뒷얘기로 이어지고 있다.
이번 5위 결정전에서는 두 팀 투수들이 도합 264구를 던졌다. 경기마다 평균 투구수 250~300개가 기록된다. 그러나 흐름을 결정짓는 것은 늘 그중 하나다.
지난해 한국시리즈에서는 2차전 8회 LG 박동원이 KT 박영현에게 때린 역전 투런홈런이 가을야구 엔딩을 결정했다. 1차전을 내주고 2차전도 1회부터 0-4로 밀리며 시작한 LG는 3-4으로 추격전을 이어가던 중 8회 박동원의 한방으로 시리즈 흐름을 완전히 바꿨다.
그때도 박영현이 던진 초구는 한복판 체인지업. 우타자 박동원에게 던진 우투수 박영현의 체인지업은 바깥쪽 보더라인을 타고 가듯 하더니 스트라이크존에서도 양궁 과녁의 ‘X텐’으로 잘 익은 먹잇감이 돼 흘러 들어갔다. 구종 선택을 두고 역시 여러 평가가 이어졌던 대목이었다.
가을야구는 한 장면이다. 그래서 공 하나하나에 의미가 더해진다. 경기를 하는 투수와 타자도, 경기를 보는 팬들도 공 1개의 이유와 결과에 주목하게 된다. 공 1개가 전부일 수 있는 시간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