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은 일시적이지만 클래스는 영원하다. KT의 ‘빅게임 피처’ 윌리엄 쿠에바스(34)가 다시 한번 자신의 진가를 증명했다. 2일 잠실에서 열린 두산과 와일드카드 결정 1차전 선발로 등판해 6이닝 4피안타 무실점 호투로 4-0 팀 승리를 견인했다.
출발이 썩 좋지는 않았다. 선제 4득점을 등에 업고 1회말 마운드에 올랐지만, 두산 첫 타자 정수빈에게 기습번트를 허용했고 후속 김재호에게 중전안타를 맞았다. 시작부터 맞이한 무사 1·2루 위기, 제러드 영의 잘 맞은 타구가 1루수 오재일의 글러브에 그대로 들어갔다. 행운이 따른 아웃 카운트로 한숨 돌리고 나더니 이후 쿠에바스의 피칭은 거침이 없었다. 김재환을 1루 땅볼, 양석환을 유격수 땅볼로 처리하며 실점을 막았다.
2회부터 쿠에바스는 완벽에 가까운 피칭을 했다. 140㎞ 후반대 포심을 타자 몸쪽으로 붙이면서 쉽게 카운트를 잡았고, 날카로운 커터와 슬라이더를 결정구로 활용하며 두산 타자들을 요리했다. 상하 좌우 스트라이크존을 폭넓게 활용했다. 포수 장성우(34)와 호흡도 완벽했다. 베테랑 배터리의 노련함에 두산 타자들은 좀처럼 대처하지 못했다.
3회말 첫 타자 조수행을 실책으로 내보냈을 뿐, 이후 두산 타순이 한 바퀴 돌 때까지 출루를 허용하지 않았다.
6회말 정수빈과 제러드에게 안타를 맞으며 1사 1·3루가 됐다. 1회 이후 쿠에바스가 이날 경기 처음으로 맞이한, 위기다운 위기였다. 김재환을 상대로 KT 투·포수의 노련함이 다시 빛났다. 복판 변화구로 초구 스트라이크를 잡았고, 위아래로 타자 시선을 흐트러더리더니 6구째 바깥쪽 낮은 슬라이더로 서서 삼진을 잡아냈다. 직구는 하나도 없이 커터와 슬라이더, 체인지업만으로 상대를 물리쳤다. 이어진 2사 1·3루에서 맞이한 양석환 역시 슬라이더 2개와 커터 2개로 4구째 헛스윙으로 돌려세웠다. 바깥쪽 빠지는 4구째 슬라이더에 양석환의 방망이가 헛도는 순간 쿠에바스가 크게 포효하며 주먹을 휘둘렀다. 6회까지 103구를 던지며 스트라이크가 72개로 볼(31개)로 2배 이상 많았다. 사사구 하나도 없이 삼진 9개를 잡았다.
정규시즌 쿠에바스는 예년보다 기복이 심했다. 173.1이닝을 던지면서 평균자책 4.10에 그쳤고 7승(12패)밖에 올리지 못했다. 시즌 마지막엔 2경기 연속 5회를 채우지 못하고 빠르게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정규시즌 두산 상대전적도 1승 2패 평균자책점 5.79로 좋지 않았다. 이날 두산 선발 곽빈이 KT 상대 극강이었던 것과 대비가 많이 됐다.
시즌 기록만 따지면 불안요소 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가을의 쿠에바스는 달랐다. 통산 7경기 4승 1패, 평균자책점 2.87. ‘빅게임 피처’ 쿠에바스가 이날까지 남긴 KBO 포스트시즌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