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왼쪽)이 지난 8월 프랑스 파리에서 잔니 인판티노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을 만나 자신의 자서전을 선물하고 있다. 국제축구연맹 제공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62)은 악화된 여론 속에서도 연임과 관련한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지난 국회 현안질의에서도 ‘원론적인 답변’에서 멈췄다. 출석해야 하는 국정감사 때도 국회의원들의 사퇴 요구가 빗발칠 것이 확실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입장 표명이 없는 데는 잔니 인판티노 국제축구연맹(FIFA) 방한을 반전 카드로 삼으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제기된다. 두 달 전 정 회장은 프랑스 파리에서 인판티노 회장을 만나 자서전(축구의 시대)을 선물한 바 있다.
대한축구협회의 한 관계자는 10일 기자와 통화에서 “10월 29일 열리는 아시아축구연맹(AFC) 애뉴얼 어워즈 서울 2023에 인판티노 회장의 참석이 논의되고 있다. 인판티노 회장은 시상식이 열리기 하루 이틀 전 입국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올해로 30주년을 맞이하는 AFC 연간 시상식은 아시아 축구계에서 가장 권위있는 행사다. 지금껏 AFC 본부가 있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매년 행사를 열었으나 지난해 카타르가 시상식을 열었고, 올해는 10월 29일 서울 경희대 평화의 전당에서 성대하게 열린다. 한국은 이 행사에서 AFC 올해의 남·녀 선수(설영우·김혜리)와 올해의 아시아 국제 남자 선수(손흥민), 올해의 청소년 남·녀 선수(배준호·케이시 유진 페어), 올해의 남·녀 감독상(황선홍·박윤정), 올해의 협회상(대한축구협회) 등에 후보군을 올렸다. AFC는 약 600명이 참석하는 이번 행사의 개최 및 숙식 비용을 책임진다.
AFC 내부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 역시 인판티노 회장이 참석할 것이라고 확인했다. 인판티노 회장은 AFC 연간 시상식과 다음날 서울 콘래드 호텔에서 시작되는 AFC 사무총장 컨퍼런스까지 모두 참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AFC 회원국 사무총장들과 교류하는 AFC 사무총장 컨퍼런스에 방점이 찍혀있다. 인판티노 회장은 지난해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서 열린 이 행사에도 참석했다.
인판티노 회장의 방한은 최근 문화체육관광부의 감사와 국회 국정 감사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축구협회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지난달 FIFA는 축구협회에 발송한 공문에서 “축구협회에 대한 문체부의 감사가 진행 중이고, 국회 문체위 질의도 있었던 사실을 주목하고 있다”며 “축구협회는 자율적으로 사무를 관리하고 외부의 부당한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할 법적 의무가 있다”고 밝히며 주목을 받았다.
FIFA는 각국 축구협회가 제3자의 간섭을 받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실제로 2015년 쿠웨이트 정부가 체육단체 행정에 개입할 수 있도록 법률을 개정하자 쿠웨이트에 자격 정지 처분을 내려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예선 잔여 경기를 몰수패 처리한 사례가 있다.
지난해 말에는 브라질축구협회장 선거에서 부정행위가 적발됐다며 법원이 에지나우두 호드리기스 회장을 직무에서 해임하고 새로 선거를 치르라고 판결하자 FIFA가 국제대회 출전권 박탈을 언급했으나 호드리기스 회장이 올해 초 복직하며 징계 조치가 취해지지는 않았다.

잔니 인판티노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이 2017년 6월 12일 청와대 접견실에서 당시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대화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최근 국정감사에서 “FIFA가 축구협회에 보낸 공문은 의례적인 절차로 본다”고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면서도 협회의 자율성을 인정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인판티노 회장이 한 발 나아가 윤석열 대통령과 면담할 가능성도 열려있다. 인판티노 회장은 2017년 6월 당선 초기인 문재인 전 대통령을 정 회장과 함께 접견한 전례가 있다. 이번에는 셰이크 살만 빈 에브라힘 알 칼리파 AFC 회장도 동석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인판티노 회장이 대통령과의 면담에서 축구협회의 자율성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내용의 ‘강한 발언’을 한다면 정 회장의 거취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앞서 윤 대통령은 문체부의 축구협회 중간 감사 결과를 보고받고 “국가대표는 대한민국 국민의 자부심이 되어야 한다”며 “특히 국민에게 큰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는 축구 대표팀의 사령탑인 감독 선발은 과정부터 공정하고 책임 있게 진행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은 이어 “대한축구협회에 대한 관리 감독 책임이 있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여러 의혹에 대한 진상을 명백히 밝히고, 현장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을 수 있는 확실한 개선 방안을 마련하라”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