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기분 좋아.”
배우들이 예능에 나가는 이유가 좀 더 매력을 알리기 위함이라면 최근 가장 좋은 사례가 아닌가 싶다. 대중은 ‘나의 해방일지’에 이어서 또 한 명의 ‘구씨 아저씨’를 갖게 됐다. 바로 배우 구성환이다. 연기로는 이렇다 할 존재감을 떨치지 못했던 그가 최근 예능을 통해 새로운 샛별로 거듭났다.
구성환은 최근 MBC 예능 ‘나 혼자 산다’에서 고정 멤버가 돼 한자리를 꿰차 앉았다. 그가 처음부터 스튜디오에 나왔던 건 아니었다. 시작은 ‘특별 게스트’였다. 그는 원래 고정멤버였던 배우 이주승의 절친한 형으로 2021년 12월24일 첫 등장 했다.
이후로도 그는 이주승의 분량이 있을 때면 조금씩 조금씩 등장하던 조연이었다. 2022년 7월에도 그렇게 등장했고, 지난해 4월에도 그랬다. 그런데 입지가 변한 것은 올해부터다. 4월12일 다시 한번 1년 만에 게스트로 출연했던 구성환은 아예 ‘무지개 라이브’의 주인공으로 5월17일 혼자 첫 등장 했다.
이전부터 구성환의 모습은 평범하지 않았다. 자칭 ‘무도인’이라 했던 이주승과 함께 동네 약수터에서 기이한(?) 수행을 했고, 덩치나 드라마에서의 강인한 이미지와 달리 부실한 체력을 보여주는 허당의 모습으로 웃음을 줬다.
혼자 등장한 장면에서도 비슷했다. 이전 이주승과의 등장에서 반려견 ‘꽃분이’를 애지중지하는 여린 모습과 함께 이주승과의 의리를 지키는 낭만파의 모습을 보였던 구성환은 이미지와 달리 깔끔하게 주변과 자신을 정리하는 모습과 함께 요리와 여가에 진심인 모습을 보이며 흥미를 안겼다. 최근으로 봐서는 그를 소개한 이주승보다 오히려 분량이 더욱 늘었다.
‘나 혼자 산다’를 통해 인지도가 오르자, 그를 둘러싼 환경도 변했다. 한강에서 햄버거를 놓고 비둘기와 대치하던 장면으로 웃음을 준 그는 이 장면을 오마주한 치킨 광고를 시작으로 배달 애플리케이션, 선크림, 모바일 간편결제 서비스, 섬유탈취제, 유제품 등 연이은 광고에 출연했다.
거기에 지난 7월부터는 거주 중인 서울 강동구 천호동의 삶을 보여주면서 강동구 홍보대사가 됐다. 연기 역시 올해 공개된 작품만 해도 영화 ‘다우렌의 결혼’과 ‘탈출:프로젝트 사일런스’, 지난해 드라마 ‘한강’과 올해 ‘삼식이 삼촌’ 등으로 늘어났다.
2004년 영화 ‘하류인생’의 춘식 역으로 데뷔한 구성환은 순박한 얼굴과 프로필 키 182㎝, 108㎏의 듬직한 체형으로 주로 순진한 청년이나 일진 학생의 조연 그리고 우락부락한 조직폭력배나 형사 역을 도맡았다. 2022년 SBS 드라마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의 황대선 역은 극악무도한 연쇄살인범으로, 구성환은 당시 얼굴의 미묘한 근육까지 이용하는 섬세한 연기로 섬찟함을 더욱 살려냈다.
하지만 인지도를 높게 쌓은 상황이 아닌 상태에서, 계속 이미지 캐스팅으로만 이어온 연기경력의 물줄기를 단번에 바꿀 수는 없었다. 벌써 나이는 40대 중반, 연기경력은 20년이 다 됐다. 그런 그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 것은 예능이었다.
그는 그야말로 ‘성격파’ 연기자였던 이미지에서 예능을 통해 순애보도 있고, 순수함도 있고 때론 과하게 깔끔하기도 하지만, 정 많고 낭만이 있는 새로운 모습을 보였다. 덕분에 ‘구씨 아저씨’ ‘비둘기 아저씨’ ‘꽃분이 아버지’ 등 정감이 있는 별명이 많이 생겼다.
그는 강동구 홍보대사 역할에 충실함과 동시에 지난 8월 광복절을 맞아 국가유공자 용사촌 십자성마을을 방문해 기부하기도 했다. 그리고 ‘스카우트’ ‘26년’ ‘택시운전사’ 등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영화에 연이어 출연하기도 했다. 물론 의도한 것은 아닐지라도 무거운 메시지를 가진 작품에 배우들이 출연을 어려워하는 풍토를 봤을 때 이는 그의 소신이 어느 정도 반영됐음을 짐작하게 한다.
이렇게 예능을 통해 이미지를 넓힌 구성환이 새해 어떤 역할로 또 등장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게 됐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예능은 연예인의 숨겨진 이미지를 발굴하고 오히려 폭넓은 연기를 도와주면서 시너지 효과를 낸다. ‘구저씨’ 구성환은 2024년 그 가장 훌륭한 사례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