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 두산맨’ 허경민(34)이 FA 시장 개장 이틀 만에 이적했다. 전격적이고, 충격적이었다.
두산이 허경민에게 제시한 조건은 ‘3+1’년에 30억원이다. 기존 3년 20억원에 1년 더하기 10억원을 얹은 셈이다. KT가 내놓은 조건과는 차이가 컸다. 허경민은 두산의 조건이 나온 바로 다음 날인 8일, KT와 4년 40억원에 계약했다.
두산이 초기 조건을 내놓은 이후 허경민 측과 접점을 찾아가는 과정은 사실상 없었다. KT와 계약이 워낙 빠르게 이뤄진 까닭이다. 그러나 협상이 좀 더 이뤄졌더라도, 두산이 ‘3+1년’ 30억원 이상의 조건을 제시했을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3년 20억원이라는 기존 계약이 있는 상황에서 현격히 다른 조건을 내놓기가 어려웠다. 허경민 측이 빠르게 KT와 계약을 체결한 것 또한 이런 상황을 짐작했기 때문일 수 있다. 두산은 은퇴식과 지도자 연수, 영구결번 고려 등 ‘부대조건’도 내놨지만 KT와 차이를 뒤집을 만큼의 정도는 아니었다.
두산은 허경민의 옵트 아웃 가능성을 일찌감치 인지하고 준비를 해왔다. KT 심우준의 한화 이적이라는 중대 변수가 발생했지만, 생각해 둔 조건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허경민이 필요한 선수란 건 분명하지만, ‘합리적인 조건’을 유지하겠다는 방향성을 잡아놓았던 셈이다.
속단하긴 어렵지만, 두산이 외부 자원으로 허경민의 빈 자리를 메울 가능성은 현재로선 낮아 보인다. 삼성 류지혁(34), 한화 하주석(34) 등이 시장에 나와 있지만 허경민을 온전히 대체하기는 어렵다. 세대교체에 방점을 찍은 현 기조와도 배치된다.
당장 내년 시즌 어느 정도 성적을 낼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지만, 차기 3루수로 시험해볼 자원은 적지 않다. 1군 준주전급으로 활약해 온 박준영(27), 이유찬(26), 박계범(28) 등이 있고 여동건(19), 박지훈(24), 오명진(23), 임종성(19) 등 그 아래 세대의 유망주들도 내년 시즌을 준비 중이다. 두산 한 관계자는 “여동건은 이미 타석에서 싸울 줄 아는 선수다. 박지훈이나 오명진 같은 선수도 계기만 찾는다면 1군에서 활약할 수 있는 재질을 갖췄다”고 했다. 이천 마무리캠프에서는 이미 이들 내야 어린 자원들 사이 경쟁을 유도하는 기류도 감지된다.
이번 시즌 두산의 최대 성과는 투수진 세대교체에 성공했다는 점이다. 선발과 불펜을 가리지 않고, 어리고 구위 좋은 투수들이 자기 공을 던지며 팀을 이끌었다. 그러나 야수진 세대교체는 지지부진했다. 당장 유격수 포지션에서도 시즌 말미부터 포스트시즌까지 베테랑 김재호가 다시 주전으로 나와야 했다.
야수진 세대교체가 안됐던 근본적인 이유는 젊은 선수들의 성장이 기대만 못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거액의 FA 계약이 이어지며 젊은 선수들이 기존 야수진을 뚫어내기도 쉽지가 않았다. 과거 FA 유출이 줄을 잇는 중에 새 얼굴이 끊임없이 튀어나오며 자연스럽게 구멍을 메우고 오히려 강화했던 ‘선순환’이 어느새 막혀 버렸다.
10년 이상 두산 3루를 지켰던 허경민이 이적하면서 기회의 문은 이미 활짝 열렸다. 허경민 없는, 내년 두산의 3루가 어느 정도 결과를 내느냐에 따라 그 이후 두산의 기조 또한 영향을 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