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막을 내린 tvN ‘정년이’는 주인공 윤정년(김태리)의 성장서사와 여성국극이 주는 이채로운 재미로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원작과 다른 설정과 주인공들의 역할 재배치에서 오는 아쉬움도 있었다.
정 감독은 드라마가 끝난 열흘 후 ‘스포츠경향’과 나눈 서면 인터뷰에서 이 부분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상세한 전말을 전하며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고 강조했다.
이하 정지인 감독과의 일문일답. (①에서 계속)
- 배우들의 열연이 화제였다. 이 같은 배우들과 함께 작업한 소감은 어떠했는지?
“배우 김태리가 쏟은 열정과 노력은 우리 작품을 떠받치는 큰 원동력이었습니다.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쉽지 않은 순간이 올 때 정년이를 생각하면서 버틸 수 있었습니다. 신예은의 촬영 중 반전의 순간들도 많은 힘이 되었습니다. 종종 허영서와 신예은을 오가며 장난칠 때마다 다시 영서로 돌아오라고 말로는 그랬지만 속으로는 주머니 속에 넣어 집에 가고 싶었습니다. 배우 라미란은 부드러운 카리스마의 현신이었습니다. 단원들과 있을 때는 여고생같이 해맑게 있다가 촬영만 들어가면 어느새 소복으로 초집중하는 모습에 여러 차례 반했습니다. 정은채와 김윤혜는 매란의 왕자와 공주로서 오래오래 기억할 것입니다. 저 역시 온달과 평강의 마지막 장면을 촬영할 때가 참 슬펐습니다. 둘의 마지막 무대가 드디어 끝났고 이제는 보지 못할 조합이라 생각하니 눈물이 날 정도로 아쉬웠습니다.”
- 웹툰 원작에서 핵심이었던 정년의 친구 부용이 사라진 점에 대해 많은 팬들이 아쉬움을 표현했는데?
“부용의 캐릭터를 빼 것은 주인공의 성장 서사에 집중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아무래도 방대한 원작을 다 담을 수 없어 좀 더 주인공의 성장 서사에 초점을 뒀고, 매란국극단 생활을 중심으로 담았습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원작 작가님과의 상의도 있었습니다. 제가 작품에 합류했을 때 (부용이를 뺄지 말지) 결정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최효비 작가(각본), 원작 작가와 상의하는 과정에서 12부작 안에 이야기를 어떤 식으로 집중시켜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 극 중 정년이의 행동이 독단적인 부분이 많아 ‘민폐 캐릭터’로 여겨졌다는 반응도 있었는데?
“호불호가 갈릴 것은 예상했습니다. 일반적인 입장에서는 이해가 쉽지 않은, 왜 저렇게까지 스스로를 망치면서 열정을 쏟는지에 대한 순간들이니깐요. 하지만 그만큼 어떤 경지에 도달하길 원하는 간절한 열망은 이해를 구하기 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아끼는 이에게서 스스로의 재능이 부정당하는 경험은 일종의 절망을 불러일으키고, 매란에서 최고가 되겠다는 어떤 한 길만 보던 정년이 같은 사람에게 감정적인 트라우마로 작용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정년이라는 예술가를 온전히 이해시킬 수 없어도 절망의 깊이가 조금이라도 시청자들에게 닿았기 때문에 끝까지 이 드라마를 봐주시지 않았을까요. 배우와도 이런 종류의 얘기를 많이 나눴습니다. 어떤 높은 경지에 도달하고자 하는 건 배우들 역시 갖고 있는 숙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중 드라마를 연출하는 입장에서 이를 관찰하고 시청자들에게 전달하는 건 저의 몫이고요. 지나친 불호의 입장이 많았다면 이는 결국 좀 더 섬세하게 연출하지 못한 제 탓이라고 생각합니다.”
- ‘옷소매 붉은 끝동’ 이후 ‘정년이’까지. 초반 연출작과 다르게 시대극이나 사극에서 더 큰 반향을 불러오고 있습니다. 현대극과 다르게 시대극이나 사극이 본인에게 가지는 의미는 무엇이며, 그 매력은 무엇이라고 보는지.
“사극과 시대극 속에는 현재를 사는 사람들에게는 없는 일종의 ‘간절함’이 있습니다. 한 번 헤어지면 다시는 만나지도 보지도 못하는 간절하고 안타까운 심정이 사극과 시대극의 마음이자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현대극이었으면 전화나 문자, SNS 댓글 하나로 해결되는 것들이 그 시절에는 절대 가능하지 않으니깐요.
이번에도 그런 간절한 마음들이 작품 속에 모여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향에 두고 온 가족들을 다시는 만나지 못할 수 있는 상황, 한 번 헤어지면 다시는 만나지 못할 소중한 인연의 간절함이 <정년이>에 있습니다. 이런 부분들이 현대극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일종의 애틋한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 ‘정년이’ 연출 과정에서 MBC를 퇴사하게 됐다. 앞으로 어떤 스타일의 작품, 어떤 연출을 해보고 싶은가.
“아직은 정년이로 가득 차 있는 상태입니다. 당분간은 비워내는 과정에 몰두할 예정입니다.”
- ‘정년이’가 시청자들에게 어떻게 기억되기를 바라나.
“소리 한 가락, 한 소절을 우연히라도 듣게 되면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소리인데, 아 정년이에서 나왔구나!’ 정도의 반응만 나와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