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 종주국 다운 집회 모습에 세대와 국가를 넘어 놀라움을 표하고 있다.
지난 7일과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는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안 가결과 윤 대통령의 탄핵 및 구속을 요구하는 인파가 몰렸다. 이날 진행된 집회에는 10만 명(경찰 추산)이 넘는 대규모 인원이 자리한 가운데, 새로운 집회 문화를 보여주며 화제를 모았다.
21세기에 들어 치러진 평화적 시위는 소위 ‘촛불 집회’로 불리며, 항의나 추모의 목적으로 촛불을 들고 모여 비폭력 시위를 진행하는 방식이다. 초창기에는 양초에 종이컵을 끼워 촛불이 꺼지지 않도록 들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이후에는 편리성과 안정상의 이유로 LED 전구가 달린 촛불 모형을 들기도 했다.
그리고 2024년, 한층 더 진화한 ‘응원봉 집회’가 등장했다. 2020년 이후 K팝이 전 세계적으로 큰 파급력을 미치고 있는 가운데, 그 종주국으로서, K팝 문화가 진하게 녹아든 집회 모습을 통해 젊은 세대가 국민으로서 권리를 되찾기 위해 얼마나 적극적으로 행동 하고 있는지 보여준 대목이다.
이날 집회에는 방탄소년단의 ‘아미밤’, 여자친구의 ‘유리구슬봉’, 블랙핑크의 ‘뿅봉’, 에스파의 ‘스봉이’, 뉴진스의 ‘빙키봉’, 비투비의 ‘나팔봉’ 등 다양한 K팝 그룹의 응원봉이 곳곳에 자리했다. 일명 ‘돈까스 망치’ ‘토르 망치’로 불리며 디자인에 대한 팬들의 볼멘소리를 듣던 NCT의 ‘믐뭔봉’은 이날 시위 문구를 담을 수 있는 넓은 면적으로 인해 타 팬덤으로부터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집회장의 큰 전광판을 통해 각 팬덤의 응원봉이 소개되며 응원봉의 주인들은 물론, 함께 자리한 4050 세대들도 이를 즐겁게 관람하는 모습이 포착됐고, 또 밤이 되자 각자의 빛을 내며 오색찬란하게 빛나는 응원봉은 장관을 이뤘다.
웅장한 민중가요 대신 신나는 K팝이 연신 울려 퍼지기도 했다.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를 비롯해 로제의 ‘아파트’, 에스파의 ‘위플래시’, 샤이니 ‘링딩동’, 세븐틴 부석순 ‘파이팅 해야지’ 등이 나오는 가운데, 시위에 나선 이들은 살짝 개사한 가사를 열창하고 방방 뛰기도 하면서, 추운 밤늦게까지 집회장의 열기를 뜨겁게 달궜다.
이런 색다른 집회 풍경을 외신들도 “K팝 속에서 참가자들이 즐겁게 뛰어다니고, 형형색색의 응원봉과 LED 촛불을 흔드는 등 일부 시위는 댄스파티를 연상케 했다”(AFP 통신), “주최 측이 K팝을 틀자 군중들이 춤추고 노래하며 형형색색의 응원봉을 흔들기 시작했다. 집회가 즐거운 팝 콘서트로 바뀌었다”(영국 BBC), “기온이 영하로 떨어졌지만 군중은 K팝에 맞춰 노래하고 형광색 응원봉을 흔들며 시위했다”(미국 뉴욕타임스)라고 앞다퉈 보도했다.
이는 앞서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로 인해, “한국의 두 얼굴”이라던 지적으로 상처 입었던 K팝 자존심을 회복하는 모습이기도 하다. 영국 가디언은 비상계엄 선포와 관련해, ‘K팝과 독재자, 계엄이 한국의 두 얼굴을 드러냈다’고 맹비난했다. K팝의 자유와 평화를 노래하는 메시지가 전 세계적으로 사랑 받는 가운데, 이와 정반대되는 국정의 행보가 충격을 준 것이다.
그러나 집회에 깊이 녹아든 K팝은 다시 자유와 평화의 얼굴을 되찾았다. 좋아하는 그룹의 명예를 위해 선행할 것을 독려하는 K팝의 팬덤 문화가 ‘국위선양’으로 불리는 K팝의 행보, 그리고 그 종주국으로서 명예를 지켜낸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