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에는 힘이 느껴졌다. 누구보다 빛났던 2024년을 마치고, 설레이는 2025년을 기다리는 자신감이었다.
전남 드래곤즈의 지휘봉을 새롭게 잡은 김현석 감독(57)은 12일 기자와 통화에서 “인생은 늘 도전이 아니냐”며 “올해 성공한 충남아산에 대한 애착으로 고민이 많았지만, 새로운 도전의 기회가 주어졌으니 붙잡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 감독이 자부심을 가질 만큼 올해 충남에서 보여준 성과는 눈부셨다. 충남아산의 정규리그 36경기 성적표는 17승9무10패로 역대 최고 성적인 2위. 승강 플레이오프(PO)에 당당히 진출해 K리그1 11위인 대구FC를 상대로 1차전에서 4-3으로 승리한 뒤 2차전에서 연장 혈투 끝에 1-3으로 패배했다. 첫 1부 승격의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충남아산이 2부에서도 저예산(2023년 기준 약 27억원·2부 10위) 팀이라는 점에서 놀라운 성과다.
두 번의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부담감 속에서 이뤄낸 결과이기도 하다. 현역시절 그는 ‘가물치’로 불렸다.
날씬하고 빠른 가물치처럼 준족이라 생긴 별명이었다. 100m를 12초에 끊을 만큼 발이 빨랐던 그는 1990년 울산 현대에 입단해 2003년 은퇴할 때까지 371경기를 뛰면서 110골(54도움)을 넣었다. K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6번이나 이름을 올렸고, 최우우선수(MVP·1996년)와 득점왕(1997년)도 한 차례씩 수상했다.
선수로는 모든 면에서 누구보다 빨랐던 그가 지도자로는 가장 늦게 출발선에 섰다. 울산 코치로 9년, 강릉중앙고 감독(3년)과 울산대 감독(3년) 그리고 충남아산 사무국장으로 2년을 거쳐 올해 충남아산 감독으로 프로에 데뷔했다. 김 감독은 “요즘 추세가 젊은 지도자들이 대세인 것과 비교하면 늦깎이 지도자”라면서 “늦게 출발했지만, 그만큼 코치로 많은 노하우를 쌓았기에 올해 충남아산에서 나름의 성공을 이룬 것 같다”고 말했다.
남들보다 늦은 대신 남들과 다른 ‘눈’을 가졌다는 게 장점이다. 숨겨진 재능을 찾아내는 눈이다. 광주FC에서 벤치 신세였던 골키퍼 신송훈을 올해 K리그2 베스트 일레븐 골키퍼 부문 후보로 키워낸 것이나 김포FC에서 자유계약선수(FA)로 풀린 주닝요를 14골 9도움을 기록한 해결사로 바꿔놓은 것이 대표적이다. 미드필더 강민규나 김종석, 수비수 이은범, 강준혁, 이학민 등도 이젠 다른 팀들이 탐내는 선수들이 됐다.
김 감독은 “여러 감독님을 모시니 배운 것도 많다. 한 분에게는 선수 관리하는 법, 다른 분에게는 소통하는 법을 배웠다. 그 모든 것을 올해 충남아산에서 썼다. 내가 잘했다는 평가보다 선수를 잘 키웠다는 칭찬이 기쁘다”고 웃었다.
김 감독의 몸값이 치솟은 배경도 선수 육성 능력이었다. 충남아산과 맺은 계약이 12월로 만료된다는 소식에 올해 4위로 마친 전남에서 연락이 왔다.
김 감독이 전남에서 받은 주문도 전남의 재발견이다. 철강기업 포스코가 모기업인 전남은 2018년 K리그1 꼴찌로 2부로 밀려난 뒤 예산이 줄었다. 비싼 선수를 데려오는 것보다는 가능성이 있는 선수들을 중심으로 1부 복귀를 꾀해야 한다. 김 감독은 “이제 전남 선수들을 파악하는 단계다. 충남아산에서 이름값을 배제하고 제로베이스에서 출발한 것처럼 전남에서도 선수 관찰로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도전 의식을 불태우고 있는 김 감독이 낙관론은 경계하는 게 눈길을 끈다. 인천 유나이티드가 2부로 강등되고, 수원 삼성은 1부로 올라가지 못하면서 경쟁이 더욱 치열해졌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또 다른 기업구단인 서울 이랜드FC와 부산 아이파크 그리고 성남FC 같은 시민구단도 투자면에선 전남보다 윗길이다. 김 감독은 “내년은 더 힘들 것이라는 각오로 준비하려고 한다. 전남이 올해보다 나은 성적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겠다. 옆도 뒤도 돌아볼 시간이 없다. 축구에만 매달리면서 내년을 기다리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