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창기는 안산공고 3학년 시절 신인드래프트에서 낙방한 뒤 대학에서 4년간 기량을 갈고닦아 2016 KBO 신인드래프트에서 LG의 지명을 받았다. 홍창기 제공

LG 홍창기. 정지윤 선임기자
①‘고교생 홍창기’에게 대학이란 사다리가 없었다면
②그들만의 리그에서도 꿈이 자란다
③기본기와 센스, 지금 대학야구 필요한 것들
①‘고교생 홍창기’에게 대학이란 사다리가 없었다면
“대학 4년이 없었다면 지금의 홍창기도 없었을까요?”
홍창기(32·LG)는 고민 없이 “그렇다”고 답했다.
KBO리그를 대표하는 톱타자 중 한 명인 홍창기는 대졸 출신이다. 안산공고 시절 첫 번째 신인드래프트에서 낙방한 뒤 건국대에 입학했다. 대학에서 4년간 프로의 문턱을 넘기 위해 기량을 갈고닦았고, 두 번째 도전인 2016 신인드래프트 2차 3라운드(27순위)에서 LG의 지명을 받았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처음 야구를 시작한 그의 오랜 꿈이 이뤄진 순간이었다.
“감독님이 신인드래프트 행사장에 초청됐다는 이야기를 해주셨을 때 가장 기뻤던 것 같다. 이름이 불릴 때도 정말 기분이 좋았다. 한 번의 실패가 있었기 때문에 ‘드디어 됐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홍창기의 표현을 빌리면, 고교 시절 그는 ‘애매한 선수’였다. 지금은 골든글러브를 두 차례 수상한 국가대표 외야수지만, 고교 3학년 2학기가 되기 전까지 주로 투수로 뛰었다. 구속이 생각보다 오르지 않았고, 결정적으로 ‘입스’ 때문에 신인드래프트를 코앞에 두고 야수로 전향했다. 야수로도 소질을 보였지만, 고교 3년간 보여준 게 적었다. 결국 첫 도전에 쓴맛을 봤다.
“상실감이 엄청 컸다. 부모님께 특히 죄송한 마음이 많았다. 집에 가는 버스 안에서 부모님과 통화하며 처음 울었다. 왜 안 됐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안 되는 게 당연했다. 홈런을 많이 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달리기가 엄청 빠르지도 않았다. 야수를 전문적으로 한 것도 아니라서 되게 애매한 선수였다.”

건국대 시절 홍창기. 홍창기 제공

LG 트윈스 홍창기가 26일 서울 송파구 롯데호텔 월드 크리스탈볼룸에서 열린 2024 신한 쏠뱅크 KBO 시상식에서 우익수 부문 수비상을 수상하고 있다. 2024.11.26 권도현 기자
방황은 길지 않았다. 대학을 가든, 육성 선수로 입단 기회를 노리든 야구를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당시 육성 선수 제의를 받지 못한 홍창기에게 대학은 야구를 계속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지였다. (지금은 불가능하지만) 프로에 가지 못할 것을 대비해 미리 입학할 대학을 정해두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대학 진학은 그의 야구 인생에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대학에서 처음 전문 외야수로 뛰며 1학년 때부터 경기에 많이 나갔다. 살도 찌우고 운동도 하면서 체격을 키웠고, 장타도 많이 치려고 연습했다. 수비하는 것도 재밌었다. 4년이 진짜 짧게 느껴졌다.”
홍창기는 대학에서 희망을 보며 야구를 했다. 당시엔 대졸도 고졸 못지않게 신인드래프트에서 지명을 많이 받았다.
“과거 대졸 신인은 즉시 전력이라는 이야기가 많았다. 그 정도로 좋은 투수들과 타자들이 많았다. 건국대도 최소 1~2명은 매년 프로에 갔다. 나도 조금만 더 잘하면 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만약 그런 선배들이 없었다면 희망이 없다고 느꼈을 것 같다.”

지난해 11월 대만에서 열린 프리미어12 일본과 경기에서 안타를 친 뒤 세리머니하는 홍창기. 연합뉴스
홍창기는 근래 대학야구가 처한 위기를 안타까워했다. 대졸 출신 후배들이 점점 줄어드는 것을 보며 대학야구의 경쟁력이 떨어진 것을 체감하고 있다.
“현재 대학야구 시스템이 안타깝다. (연습 시간, 장소 등) 운동할 여건이 안 돼 있는 게 아쉽다. 팀 스포츠인데 단체 운동할 시간도 부족하다고 한다. 이런 환경에서 야구를 잘할 수 있을까.”
신인드래프트에서 떨어진 ‘고교생 홍창기’는 대학이란 마지막 사다리를 타고 프로의 꿈을 이뤘다. 홍창기는 비슷한 좌절을 겪은 어린 선수들에게도 대학이 그런 존재이길 바랐다.
“대학이란 선택지가 없었다면, 앞으로 야구를 못 한다는 생각에 엄청 갑갑했을 것 같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그만두는 선배들도 많았다. 요즘엔 대학에 입학한 뒤 야구를 빨리 포기하는 사례가 늘었다고 한다. 아직도 대졸이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선수들이 프로에 많이 왔으면 좋겠다.”
대학야구라는 사다리가 흔들린다

지난해 9월 2025 KBO 신인드래프트에서 프로의 지명을 받은 선수들. 이날 뽑힌 110명 중 대학 선수는 16명이었다. 연합뉴스
2025 KBO 신인드래프트에선 총 110명이 프로 구단의 지명을 받았다. 이 중 대학 선수는 16명에 그쳤다. 특히 4년제 대학의 약세가 두드러졌다. 당시 드래프트에서 지명받은 4년제 출신은 6명, 얼리드래프트를 제외한 졸업 예정자는 3명에 불과했다.
4년제 대학 감독들은 드래프트 직후 성명서를 통해 “대학야구의 몰락은 야구를 시작하는 유소년의 선택과 중고생의 진로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며 “궁극적으로 한국 야구의 기반이 상실될 수 있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얼핏 사정이 나아 보이지만, 2년제 감독들도 현재 대학야구가 위기라는 데 이견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고교 선수와 대학 선수가 거의 절반씩 지명됐던 2014 신인드래프트 이후 10여 년 사이 대학 선수 지명률이 큰 폭으로 감소했다. 올해 16명은 2010년대 이후 최저치다.
손동일 원광대 야구부 감독은 현 위기 단계를 1~10으로 분류할 경우 ‘9’에 다다랐다고 분석했다. 손 감독은 “아마야구는 프로의 젖줄이다. 이 선수들이 잘 자라서 프로에 가야 프로도 성공한다”며 “그런데 아마야구가 지금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특히 대학이 제일 낙후돼 있다. 모두가 관심을 갖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그렇다면 대학 선수들의 지명률이 현격히 떨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복수의 프로 구단 스카우트 팀장은 ‘기량 저하’를 주된 이유로 꼽았다. 수도권 구단의 A 스카우트 팀장은 “하위 라운드에서 고교 선수를 뽑을 땐 신체 조건 하나만 보고 뽑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최소 2년, 최대 4년간 대학에서 야구를 한 선수들의 기량이 신체 조건 하나만 보고 뽑는 고교 선수보다 월등히 낫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여기에 군 문제까지 더해지면 프로의 선택을 받긴 더 힘들다.

2010~2025 KBO 신인드래프트 출신별 지명 현황. KBO 제공
지방 구단의 B 스카우트 팀장은 “대학 선수를 의도적으로 배제하지 않는다. 고등학교 때보다 실력 향상이 더디면 매력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라며 “가장 중요한 건 대학 선수들이 자신의 약점을 보완해 기량을 향상시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두 관계자가 공통으로 꼽은 문제점이 있다. 훈련량 부족이다. 이는 대학야구 현장의 가장 큰 불만 사항이기도 하다. 물론 선수이면서 학생인 대학야구 선수들이 학업과 운동을 병행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2016년 정유라씨의 이화여대 체육특기자 입시 및 학사관리 특혜 의혹이 불거진 이후 체육특기자들에 대한 입시 전형과 학사관리가 더 엄격해졌다. 과거보다 대학 선수들의 학업 중요도가 훨씬 높아진 것도 사실이다.
이연수 성균관대 야구부 감독은 “선수들의 강의 시간이 다 다르다. 수업이 끝나고 야간에 훈련하는 게 아니면 정상적인 팀 훈련을 할 수 없다”며 “지금은 짧은 시간에 얼마나 효율적으로 운동을 시키느냐가 관건이다. 성대는 야구장이 캠퍼스 안에 있어 상관없지만, 멀리 이동해야 하는 학교들은 더 힘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A 팀장은 대학의 이 같은 상황을 “위험하다”고 진단했다. 그는 “만약 프로에서 경쟁력 있는 고교 선수만 지명하면, 뽑히지 못한 선수들이 대학에 진학해 대학야구 활성화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서도 “훈련을 제대로 못 하는데, 대학 진학이 더 낫다고 말하기 어렵다. 구단 입장에서 구단이 직접 키우는게 낫다고 여기는 상황”이라고 짚었다.
이는 상대적으로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춘 2년제 대학의 선호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강릉영동대, 동원과기대 등 일부를 제외하면 신인드래프트에서 1명의 지명자도 배출하지 못하는 전문대도 많다.
이문한 동원과기대 감독은 “전문대가 20개 팀 정도 된다. 이 중에서 잘 되는 팀은 3~4개 팀밖에 없다. 대학야구가 소수를 위해 운영되는 건 아니다”며 “대학은 프로에 도전할 수 있는 거의 마지막 기회다. 대학에서 희망을 가지고 간절하게 운동하는 선수들이 프로 선수가 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