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42대 대한체육회장으로 당선된 유승민. 연합뉴스
지난 14일 대한체육회장 선거일. 많은 사람이 투표장으로 몰렸다. 이들은 자신들이 지지하는 후보 이름을 외쳤다. “이기흥” “강태선” “오주영” 등이 연호됐다. 이기흥, 강태선을 외치는 사람들은 대부분 남자, 중년 중심이었다. 오주영 지지자들은 20~30대 젊은 사람들이었다. 유승민을 연호하는 목소리를 기자는 듣지 못했다. 다만 현정화, 김택수 등 탁구계 유명 인사들이 투표장 입구에서 사람들과 기념사진을 찍는 정도였다.
기자는 선거에 앞서 후보 측 인사들, 체육인들과 두루두루 만났다. 물론 저마다 자기 후보가 이긴다고 했지만, 이들의 기조는 사실 비슷했다. 이기흥 1강, 강태선, 유승민, 강신욱 3중 구도였다. 이기흥 후보 측은 40% 득표로 압승을 기대했다. 경쟁 후보 측은 자신들의 후보가 신승을 거두리라 전망했다. 대부분 이기흥 1강 체제는 부인하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투표일은 평일 대낮, 투표 시간은 겨우 150분. 선거인단을 데리고 한정된 시간에 맞춰 서울 투표장소까지 올 수 있는 조직력이 승부를 가를 변수로 예상됐다.
취재진 의견도 대동소이했다. “선거는 자금, 조직력으로 하는 것이다. 8년간 회장을 하면서 지방체육회 조직을 다진 이기흥, 블랙야크 회장·한국스카우트연맹 총재로 자금력과 조직력까지 겸비한 강태선의 2파전”이라는 의견이 중론이었다.
그런데 선거 결과는 달랐다. 이기흥 후보는 유효표 1209표 중 379표(31.3%)를 얻어 2위에 그쳤다. 1위는 유승민 후보였다. 유 후보는 34.5%에 해당하는 417표를 받았다. 다수 언론들은 대이변이라고 표현했다. 유 후보에게는 미안하지만 유 후보가 3위에 머무리라 예상한 기자도 깜짝 놀랐다. 한 체육계 인사는 “선거 결과를 보고 관전평을 쓰려고 했다가 포기했다”며 “고정관념에 사로 잡힌 나 자신에 대한 반성문을 써야할 것 같다”고 말했다.
유 당선인은 선거 후 이렇게 말했다.
“진정성을 믿고 마지막까지 열심히 했다. 선수로 올림픽 준비할 때보다 더 힘을 쏟았기 때문에 대기실에서 기다리며 마음이 편했다. 당선된 비결은 진정성이라고 본다. 나를 도와주신 많은 분들도 진정성을 보고 도와주셨고 순수한 마음으로 함께 뛰었다. 체육인들이 변화에 대한 열망을 보여주셨다. 그래서 더 부담된다. 화답하기 위해서 몸이 부서져라 노력하겠다.”
유 당선인이 선거 기간 가장 많이 입에 올린 단어도 진정성이었다. 후보 시절 그는 “나를 지지하든 지지하지 않든 나는 진정성 있게 내 마음을 전하겠다”며 “결과는 선거인단의 몫이다. 진심은 누구에게든 통한다. 나도 진심을 전했다면 그걸로 만족한다”고 말했다.

유승민 후보와 지지자들이 체육회장 당선이 결정된 뒤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유승민 캠프
유 당선인은 선수 시절 엄청난 훈련으로 중국을 꺾고 2004년 아테네올림픽 남자 단식 금메달을 따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 선거에 나선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서는 이른 아침부터 선수촌 입구를 지켜 선수들을 만났고 다양한 종목 경기장을 찾아 표심을 호소했다. 하루 3만보 이상 걸었고 체중도 6㎏이나 빠졌다. 그런 열심과 진정성은 그가 턱걸이도 아닌 전체 2위 득표로 선수 위원에 뽑힌 비결이었다.
선거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유 당선인이 지금까지 해온 일은 과거일 뿐이다. 지금 대한민국 체육계는 총체적 위기를 맞고 있다. 선거는 자격을 공인받는 과정일 따름이다. 35년 동안 쌓아온 역량을 모두 쏟아내 숱한 과제를 정면 돌파해야 하는 진짜 승부는 지금부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