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합뉴스
히트곡 ‘노오란 샤쓰의 사나이’로 1960년대를 풍미한 원로가수 한명숙이 22일 별세했다. 향년 90세.
박성서 음악평론가 등 가요계 소식에 따르면 한명숙은 이날 세상을 떠났다고 연합뉴스가 전했다.
1935년 평안남도 진남포에서 태어난 고인은 월남 후 태양악극단을 거쳐 미8군 쇼 무대에서 가수 생활을 시작했다.
팝에 어울리는 허스키한 음색으로 호응을 얻으며 미8군 무대에서 활약하던 한명숙은 작곡가 손석우를 만나 가수 생활의 분기점을 맞았다. 1961년 고인을 평소 눈여겨본 손 작곡가가 그에게 ‘노오란 샤쓰의 사나이’를 부르게 한 것이다.
이 곡은 당시에 흔하지 않던 힐빌리(초기 컨트리음악) 리듬의 노래는 국내외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고, 고인은 데뷔곡부터 스타로 떠올라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주한미군이나 일본에서는 친숙한 멜로디 라인에 호응 했다. 또, ‘미남은 아니지만 씩씩한 생김생김’이라는 노랫말은 대중가요에서 ‘가사의 중요성’을 입증하는 곡으로도 유명하다.
노래가 크게 유행하며 1962년에는 노래를 바탕으로 한 영화가 제작됐다. 엄심호 감독이 제작한 ‘노란 샤쓰 입은 사나이’는 10만명의 관객을 동원했고, 고인은 이 영화에서 주인공을 연기했다.
한명숙은 당시 활발한 해외활동으로 ‘한류스타 1호 가수’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고인은 생전 외국 관광객들이 ‘노오란 샤쓰의 사나이’를 애국가로 오해하는 일도 있었다는 일화를 전했다.
1963년에는 프랑스 유명 샹송 가수 이벳 지로가 내한공연에서 이 곡을 한국어로 불러 화제를 모았다. 일본과 동남아시아에도 노래가 퍼지면서 고인은 홍콩, 싱가포르, 태국 등지에서 순회공연을 진행했다.
고인은 이후에도 손 작곡가와 함께 ‘우리 마을’, ‘눈이 내리는데’, ‘센티멘탈 기타’ 등 히트곡을 연달아 냈다. ‘비련십년’, ‘사랑의 송가’ 등 고인이 생전 발표한 노래는 300여곡에 이른다.
한명숙은 성대 수술을 두 차례 받으면서도 1980년대 중반까지 꾸준한 활동을 이어갔다. 2013년에는 안다성, 명국환과 함께 앨범 ‘청춘! 그 아름다웠던 날들…’을 발표하고 복귀를 알리기도 했다.
고인은 2000년 국민문화훈장, 2003년 KBS 가요대상 공로상 등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