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용의 인앤아웃

AO 현장에서 확인한 한국 테니스의 위기

입력 : 2025.01.23 16:46
호주오픈 센터코트 로드 레이버 아레나 전경. 게티이미지코리아

호주오픈 센터코트 로드 레이버 아레나 전경. 게티이미지코리아

필자는 올해 호주오픈 현장에서 주니어 경기를 가장 관심 있게 지켜봤다. 세계 테니스의 육성 트렌드를 가장 잘 파악할 수 있고 이를 토대로 한국 테니스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점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이번 호주오픈을 통해 한국 테니스와 세계 테니스의 격차가 더욱 벌어졌다는 암울한 현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올해 호주오픈에서 본선은 물론 예선에 출전한 한국 선수는 단 한 명도 없다. 이 대회 본선에 단 한 명의 한국 선수가 출전 못한 것은 2015년 이후 10년 만이다. 예선까지 범위를 넓히면 11년 만이다.

반면, 아시아 테니스 강국으로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중국과 일본의 경우 중국은 11명(남 3명, 여 8명), 일본은 6명(남녀 각각 3명)이 출전했다.

주니어에서도 비교가 된다. 일본은 남녀 각각 5명, 중국은 여자 주니어 선수 세 명 출전했다. 우리나라는 1명은 본선 직행, 예선에는 두 명이 출전해 한 명만 본선에 올랐다.

출전 선수 수뿐만 아니라 플레이 스타일도 큰 차이가 났다. 서양 선수들은 기본적으로 아시아 선수보다 키도 크고 파워가 좋은데 여기에 경기 운영까지 갖추면서 톱 주니어 선수들은 거의 준프로급 기량을 갖췄다. 단단했는데 더 단단해진 것이다.

중국과 아시아 주니어 선수들 역시 하드웨어는 우리나라와 비슷하지만 한 박자 빨리 공을 치고 정교한 스크로크를 구사하는 등 불리한 하드웨어를 다른 방법으로 극복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테니스 선수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흔히 선수 기량, 지도자 역량, 투자를 꼽는다. 이 세 가지가 조화를 이뤄야 세계적인 선수를 배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 테니스는 위 세 가지 모두 만족스러운 수준이 아니다.

코로나19 이후 생활체육으로 테니스를 즐기는 동호인은 급속도로 증가했지만 선수 수는 감소하고 있다. 운동 능력이 있는 선수가 성공하기 어려운 테니스를 선택하지 않고 우리나라에서 인기가 높은 프로 스포츠 종목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당연하다. 세계 테니스의 흐름을 파악하고 이를 훈련에 접목할 수 있는 지도자 역시 손에 꼽을만하다.

이러한 열악한 상황에서 정현과 권순우 같은 선수가 나온 것은 어찌 보면 기적과 다름없다.

주니어 육성에 가장 중추적인 역할을 해야 할 대한테니스협회도 그동안 각종 송사에 제 기능을 상실했다. 하지만 최근 주원홍 협회장이 협회의 부채를 탕감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면서 협회는 다시 출발선에 놓이게 됐다.

8년 만에 호주오픈을 방문해 국내 주니어 선수들을 격려하고 있는 주원홍 회장은 “8년 전과 비교해 세계 테니스가 전체적으로 수준이 많이 올라갔다. 파워는 점점 좋아졌고 경쟁도 점점 치열해지고 있다”라면서 “그래도 과거 뛰어난 우리나라 주니어 선수들이 세계무대에서 경쟁력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몇 년 내 우리나라 선수가 100위 안에 진입하기란 쉽지 않을 것 같다”라고 진단했다.

호주오픈 14세부에 출전한 김동재(왼쪽)와 심시연(오른쪽)을 격려하고 있는 주원홍 회장. 테니스코리아 제공

호주오픈 14세부에 출전한 김동재(왼쪽)와 심시연(오른쪽)을 격려하고 있는 주원홍 회장. 테니스코리아 제공

삼성물산과 삼성증권 테니스단을 창단하며 우리나라에 선진 테니스 시스템을 도입한 주원홍 회장은 이형택을 비롯해 박성희, 조윤정 등을 톱100에 진입시켰다. 정현 역시 주 회장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협회 차원의 주니어 육성에 대해 주 회장은 “현재 우리나라에 13, 14세 유망주들이 있다. 이 재능 있는 선수들이 잘 성장할 수 있도록 협회 차원에서 어떻게 후원하고 도울 수 있을지 협회 차원에서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서 “우리나라에 투어 전문 코치가 많지 않다. 하지만 투어를 나가겠다는 선수들은 많기 때문에 투어 경험이 있는 지도자와 트레이너를 선수들에게 지원하는 유망주 프로그램을 생각하고 있다. 더 나아가 육성 펀드를 통해 주니어 육성 범위를 넓혀가는 밑그림도 그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뿌리가 깊은 나무는 흔들리지 않는다. 결국, 한국 테니스가 살아남으려면 주니어 육성이 절실하다. 새로운 돛을 올린 주원홍 회장 집행부가 현 위기 상황을 새로운 기회로 전환하여 한국 테니스가 재도약하는 발판을 마련해주기를 기대해 본다.

<멜버른|박준용 테니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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