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일 코치. 본인 제공

허일 코치(오른쪽에서 두번째). 본인 제공
2024년 2월, 허일 코치에게 목표를 묻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몇년 안에 이루고 싶은 꿈을 적어둔 게 있다. 더블A, 트리플A 등을 거쳐서 몇년 뒤에는 메이저리그 타격 코치가 되고 싶다는 계획을 짜 놓았다.”
당시 허 코치는 미국 아주사퍼시픽 대학교의 코치로 몸담고 있었다. 그리고 1년만에 허 코치는 꿈을 향해 한 단계 나아갔다.
지난 24일 자신의 SNS를 통해 “감사하게도 클리블랜드의 마이너리그 타격코치로 합류하게 되었다. 미국행을 결심했던 그날부터 매일 밤 꿈꿔왔던 순간이 현실이 되었다”라고 소식을 알렸다.
허 코치는 KBO리그 롯데에서 선수 생활을 보냈다. 광주제일고를 졸업한 뒤 2011년 신인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12순위로 롯데 유니폼을 입었다. 2019년 71경기를 뛰면서 자리를 잡는 듯 했으나 2020시즌을 마치고 방출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보통 은퇴 후 국내에서 지도자 등 여러가지 길을 모색하곤 하지만 허 코치는 2021년 6월 곧장 미국으로 향했다. 롯데 배터리 코치를 맡았던 행크 콩거 미네소타 코치의 도움으로 고교 코치의 기회를 받았고 이후 대학 야구 코치직의 제의를 받았다. 그리고 이제는 클리블랜드 마이너리그 코치가 됐다.
사실 처음 제의를 받은 건 좀 더 이른 시점이었다. 허 코치는 스포츠경향과의 전화 통화에서 “2023년 가을에 처음으로 면접을 봤다. 그 때도 오퍼를 받았는데 아직 갈 준비가 안 된 것 같았다. 그래서 대신 초청 코치로 유망주의 타격을 보는 일을 했었다”라며 “이번에 오퍼가 들어왔을 때에는 내가 제대로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클리블랜드를 택한 이유에 대해서는 “‘스몰마켓’ 구단이 아닌가. 그러다보니 육성 시스템이 잘 되어 있다. 그래서 내가 타격코치로 일하게 된다면 이 팀이 좋지 않을까 생각했었다”고 설명했다.

허일 코치 인스타그램 캡처
몸 담고 있던 아주사 퍼시픽 대학교에서는 많은 축하를 받았다. 허 코치는 “지금 대학 리그가 개막하려는데 나와서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 그래도 감독님이랑 코치들, 선수들도 ‘잘 된 일’이라며 모두 축하해줬다. ‘네가 여기 온 이유가 드디어 성과를 이뤄서 우리들도 기분 좋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허 코치는 이제 클리블랜드 스프링캠프 훈련 장소로 출근을 한다. 아직도 실감이 잘 나지 않는다. 훈련장에 가면 TV 중계로만 봤던 메이저리그 선수들도 종종 본다. 보 네일러도 있고 KBO리그 삼성에서 뛰었던 벤 라이블리도 만났다. 마이너리그와 메이저리그가 같은 시설을 사용하는데다 몇몇 선수들은 일찍 합류해 몸을 만들기에 이런 굵직한 선수들을 마주칠 수 있다. 그럴 때마다 허 코치는 “내가 여기에 있구나”라는 걸 실감한다.
스티븐 보그트 클리블랜드 감독 등 메이저리그 코칭스태프와도 함께 코치실에서 대화를 나눈다. 허 코치는 “감독님이 ‘언제 미국에 왔느냐’라며 말을 걸었다. 보그트 감독이 내가 속했던 아주사퍼시픽 대학 출신이다. 현재 대학 감독과도 동료였다고 한다”라고 전했다.
보그트 감독은 허 코치가 한국에서 무명의 선수였다는 사실을 전해듣고 자신의 추억을 떠올렸다. 허 코치는 “감독님이 ‘나도 유명한 사람이 아니었다. 매년 스프링캠프에서 생존하기 위해 애썼다’고 하시더라. 그러면서 어느 포지션을 봤었냐, 어느 팀이었느냐 등을 물어봤는데 내가 ‘내야수, 외야수 다 했었다. 1군 가기 위해 다 했다’고 그러니까 보그트 감독도 ‘나도 그랬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코칭스태프끼리의 미팅이 잦기 때문에 보그트 감독과도 이렇게 대화할 기회가 많았다. 클리블랜드의 고유 문화이기도 하다. 허 코치는 “하루에 미팅이 3~4번씩 있다. 크리스 안토넬리 사장, 마이크 션오프 단장 등과도 줌 미팅을 거의 매일 한다. 어떻게 선수를 육성하고 시즌을 준비하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나는 아직도 ‘굿모닝, 크리스’라고 인사하는게 적응이 안 된다”라고 웃었다.
클리블랜드는 코치로서 끊임없이 생각을 하게 하는 구단이다. 허 코치는 “지시가 내려오는게 아니라 계속해서 아이디어를 만든다. 주제를 던져주면 그 주제로 이야기를 해보고 실제로해보게 한다”라고 밝혔다.
오히려 그런 구단 분위기가 잘 맞았다. 허 코치는 “끊임없이 물음표가 생기게 하는 문화가 좋았다. 나도 선수들을 궁금하게 만들 것이다. 그런 게 육성 단계에서는 좋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미국으로 떠날 때가지만해도 주변에서는 ‘미친 짓’이라며 말리기도 했다. 결국 꿈을 위해 한 걸음 나아간 허 코치를 향해 축하의 메시지가 쏟아졌다.
비시즌 동안 미국에서 개인 훈련을 하던 NC 박민우는 본인의 일처럼 걱정했다. 허 코치는 “내가 클리블랜드에게 전화를 받았다는 걸 알고 나서는 ‘계약했냐’라며 계속 물어보며 궁금했다. 그리고 계약했다고 했을 때는 좋아했다”라고 말했다.
롯데에서 친한 선후배로 지냈던 NC 손아섭도 개인적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허 코치가 “아섭이형이 ‘네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내가 아니가 내가 더 기분이 좋다’라고 연락이 왔다. 나도 정말 고마웠다”고 했다.
허 코치는 “미국에서 커리어 하나 없었기 때문에 나 조차도 ‘헛된 꿈을 꾸는 것인가’라고 생각할 때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응원해주는 사람들을 많이 생각했다”고 떠올려봤다.
장종훈, 양상문 코치를 보면서 ‘나도 선수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지도자가 되고 싶다’라고 생각했던 게 시작이었다. 이제는 클리블랜드의 일원으로서 선수들에게 자신의 타격 철학을 전할 예정이다.
허 코치는 “어떻게 코칭하는게 좋은 방법인가에 대해 내 사수와 이야기를 했는데 결론은 ‘좋은 방법은 없다’는 것이었다. 잘 될수도, 실패할수도 있으니 가능한 모든 방법을 이용해보자고 했다. 그래서 항상 물음표를 만들어서 더 나은 선수가 될 수 있게 하는 것이 코치로서의 시작점”이라고 말했다.
이제 막 발을 내디딘 허 코치는 다음 꿈을 향해 달려간다. 그는 “다음 목표는 나의 직속 상관 자리에 가는 것이다. 단계별로 올라가서 메이저리그 타격코치가 되고 싶다. 내가 잘 할 수 있는게 타격코치라고 생각한다. 만약 꿈을 이루게 되면 메이저리그 최초가 되지 않을까”라며 꿈을 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