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8일 중국 하얼빈 헤이룽장 빙상훈련센터 다목적홀에서 열린 하얼빈 동계아시안게임 쇼트트랙 남자 500m 시상식에서 금메달을 따낸 중국 린샤오쥔(한국명 임효준, 가운데), 은메달을 획득한 박지원(왼쪽). 동메달을 차지한 장성우가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린샤오쥔(29·중국, 한국명 임효준)은 2025 하얼빈 동계아시안게임에서 연일 화제의 중심에 있었다. 줄곧 한국 취재진과의 접촉을 피해 온 린샤오쥔은 쇼트트랙 경기가 모두 끝나고 버스에 오르기 전 “친구 지원이가 계속 좋은 성적을 내는 걸 보며 나도 할 수 있겠다는 동기부여가 됐다”라는 짧은 소감을 남겼다.
린샤오쥔은 2017년부터 2019년까지 한국 국가대표로 활약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남자 1500m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2019 소피아 세계선수권에서는 4관왕에 오르며 종합 우승을 차지했다.
소피아 세계선수권은 린샤오쥔이 태극마크를 달고 뛴 마지막 국제대회가 됐다. 린샤오쥔은 그해 6월 진천 국가대표선수촌에서 훈련 중 황대헌의 바지를 잡아당겨 신체 부위를 드러나게 한 혐의로 고발당했다. 대한빙상경기연맹은 린샤오쥔에게 1년 자격정지 징계를 내렸다. 린샤오쥔은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출전을 위해 2020년 중국 귀화를 결정했다. 린샤오쥔은 이듬에 대법원에서 후배 성추행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린샤오쥔은 중국 귀화 후에도 베이징 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했다. ‘국적을 바꿔서 올림픽에 출전하려면 기존 국적으로 출전한 국제대회 이후 3년이 지나야 한다’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규정 때문이다. 이번 하얼빈 동계아시안게임은 린샤오쥔이 중국 대표팀으로서 출전한 첫 국제종합대회다.
현지에서 린샤오쥔을 응원하는 열기는 뜨거웠다. 쇼트트랙 경기가 진행되는 내내 경기장 안팎은 린샤오쥔의 팬들로 가득했다. 팬들은 린샤오쥔의 이름 마지막 글자인 ‘埈’을 새긴 빨간 깃발을 흔들며 ‘린샤오쥔 짜요우(加油·화이팅)!’라고 외쳤다. 이들은 경기 종료 후 린샤오쥔의 ‘퇴근길’을 보기 위해 경기장 출입구로 모여들었다.
중국 대표팀의 최고 스타가 된 린샤오쥔은 과거의 동료였던 한국 대표팀과 매 경기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다. 특히 한국 대표팀 남자부 에이스인 박지원(29·서울시청)과의 접전이 잦았다. 혼성 2000m 계주에서는 선두로 달리다가 마지막 바퀴에서 넘어져 박지원에게 금메달을 내줬다. 남자 500m에서는 두 번의 재출발 끝에 박지원을 제치고 1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남자 5000m 계주에서는 박지원과 몸싸움을 벌이며 한국 대표팀에 실격을 안기기도 했다.

지난 9일 중국 하얼빈 헤이룽장 빙상훈련센터 다목적홀에서 열린 하얼빈 동계아시안게임 쇼트트랙 남자 1000m 준결승에서 한국 박지원과 중국 린샤오쥔이 자리싸움을 하며 질주하고 있다. 연합뉴스
린샤오쥔과 박지원은 과거 태극마크를 달고 함께 훈련했던 친구 사이다. 박지원은 경기가 모두 끝난 뒤 “(린샤오쥔과) 너무 어릴 때부터 같이 경쟁을 해서인지 서로 고생한 생각밖에 나지 않는다”라며 “열심히 운동했고 때로는 서로를 인정하고 지원해줄 때도 있었다. 많은 시간이 흐른 것 같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린샤오쥔은 대회가 진행되는 내내 한국 취재진과의 접촉을 피해 왔다. “경기가 모두 끝난 후 말씀드리겠다”며 취재진을 지나쳤던 그는 지난 9일 쇼트트랙 경기가 마무리된 후 퇴소 버스에 오르기 직전에야 짧게 취재에 응했다.
린샤오쥔은 “유일하게 아시안게임 메달이 없었기 때문에 꼭 참가하고 싶었다”라며 “많은 팬들이 응원해주셔서 감사했고 부담감도 컸는데 이번 대회를 기회로 더 성숙해질 수 있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린샤오쥔은 박지원을 국제대회 경쟁자로 상대한 소감을 밝혔다. 그는 “원래 제 주 종목이 1500m였는데 나이가 들면서 체력이 예전 같지 않아 힘들다고 생각을 했다”라며 “그런데 초등학교 때부터 같이 훈련을 해 온 친구 지원이가 계속 좋은 성적을 내는 걸 보며 나도 할 수 있겠다는 동기부여가 됐다”라고 말했다. 그는 “경기장에서는 경쟁자이지만 밖에서는 친구다”라며 “서로 열심히 하고 있다”라고 말한 뒤 중국 대표팀 버스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