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소리에 쓴맛 본 수원X세계벽 높이 실감한 사령탑…차분하게 칼가는 중

지난해 3월3일, 염기훈 당시 수원 삼성 감독은 프로축구 K리그2 개막전 충남 아산전을 앞두고 자신감으로 가득했다.
“나도 우리가 승격 1순위라고 생각한다. K리그2도 쉽지 않지만 다 이겨낼 자신이 있다. 몇몇 선수에게 몇 골 차 승리를 예상하냐고 물었더니 5-0이라더라.”
“우리가 추구하는 ‘먼저 때리는 축구’는 오늘도 유효하다. 선수들에게도 훈련한 대로 밀고 가자고 했다. 승격하려면 공격축구밖에 답이 없다.”
“(무패 우승 가능성 질문에) 솔직히 말해 지금은 진다는 생각이 없다. 지지 않고 승격하고 싶다.”
그날 수원은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2-1로 승리했다. 그런데 불과 일주일 뒤 서울 이랜드에 1-2로 졌다. 호언장담한 무패 우승의 꿈은 개막 2경기 만에 깨졌다. 이후 수원은 시즌 도중 감독 교체까지 감행했으나 6위에 그쳐 승격에 실패했다. 수원 관계자는 “염 감독이 시즌 초 자신감 넘치게 말한 게 상대 팀들에 자극이 됐다”며 “수원은 반드시 잡아야 한다는 각오로 덤볐고, 그게 결국 부메랑이 됐다”고 털어놨다.
현재 수원 사령탑 변성환 감독은 2023년 국제축구연맹(FIFA) 17세 이하 월드컵에서 한국을 지휘했다. 화끈하게 공격축구로 나섰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3전 전패(2득점 6실점), 사상 첫 조별리그 탈락. 내용도, 결과도 모두 잃었고 최후 보루가 될 수 있는 득점도 2골뿐이었다. 변 감독은 유구무언, 비난을 온몸으로 받는 수밖에 없었다.변 감독은 지난 16일 수원 팬들과 자체 출정식에서 침착하고 차분하게 말했다.
“우리가 주목받으면 상대는 우리를 이겨야 한다는 동기만 강해진다. 올해 관심은 인천에게 쏠리기를 바란다. 우리는 조용히 준비하면서 우리 방식대로 밀고 나가겠다.”
3일 뒤 열린 K리그2 미디어 데이에서도 변 감독은 말을 아꼈다. 그러다가 간혹 촌철살인, 구밀복검 발언으로 상대 폐부를 푹푹 찔렀다.
윤정환 인천 감독은 “우리 팀이 독보적으로 치고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변 감독은 “우리가 인천의 독주를 막겠다”고 말한 뒤 “다른 13개 팀도 인천이 독주하게 두지 않을 것”이라는 사족 아닌 사족을 덧붙였다. 수원이 지난해 큰소리치다가 공공의 적이 된 것처럼 다른 팀과 공동전선을 구축해 인천을 제압하자는 의미가 담긴 발언이었다.
올해 개막전에서 수원과 맞붙은 이관우 안산 감독은 젊은 초보 감독답게 더욱 호기로웠다. 이 감독은 “39경기가 결승전이라는 각오로 임하자고 했다. 첫 경기 수원부터 끌어내리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변 감독은 “겸손하려고 했는데, 이 말은 해야겠다”며 마이크 타이슨의 유명한 말을 인용해 일침을 날렸다.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은 갖고 있다. 처맞기 전까지는.”
지난해 큰소리 쳤다가 쓴맛을 본 수원, 재작년 호기롭게 세계 벽에 도전했다가 혹독함을 절감한 감독. 불과 2년 전 인생에 남을 엄청난 실패를 경험한 변성환 감독은 오소리, 싸움닭에서 너구리, 능구렁이로 변신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