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IA 박찬호, 최원준, 김도영. KIA 타이거즈 제공
KIA는 지난해 시즌을 준비하며 꿈의 라인업을 그렸다. 박찬호, 최원준, 김도영까지 빠른 타자 3명을 맨앞, 상위타선에 차례로 배치하는 것이었다.
김도영이 38홈런이나 터뜨리기 전이었다. KIA의 대표적인 빠른 타자 셋 중 가장 장타력 있는 김도영을 3번에 배치하고 40도루는 뛸 수 있는 박찬호와 최원준을 테이블세터로 내세워 초반부터 정신없이 상대를 흔들겠다는 계획이었다. 그 뒤에는 묵직한 나성범, 소크라테스, 최형우를 투입해 해결하는 것이 KIA의 구상이었다.
KIA는 실제 이 라인업으로 시즌을 치르지는 못했다. 시범경기에서 최원준의 타격 컨디션이 워낙 떨어진 데다 나성범이 부상당해 개막 이후 한 달 지나 복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막 이후 김도영이 폭발하면서 시즌 중반 즈음, 박찬호와 최원준이 그 앞에 서면서 줄줄이 달리고 훔치고 득점 행진하는 무서운 라인업의 위력을 KIA는 확인할 수 있었다. 4번 타자 최형우와 봄을 지나 터진 소크라테스, 그리고 여름 이후 뜨거워진 나성범의 화력은 KIA 타선을 공포스럽게 만들었다.

KIA 김도영. KIA 타이거즈 제공
2025년 KIA는 다시 이 꿈의 라인업에 도전한다.
이범호 KIA 감독은 일본 오키나와에서 스프링캠프를 마칠 무렵 “김도영 앞에는 빠른 타자들이 있는 것이 훨씬 낫다”며 박찬호와 최원준을 이상적인 테이블세터로 보고 있음을 시사했다. 장타도 되고 발도 빠른 김도영의 타순은 지난해에 이어 3번으로 고정한다. 그렇다면 그 외 상위타선 대안은 김선빈이지만, 콘택트 능력은 뛰어난 김선빈이 전처럼 뛰기는 어렵다.
김도영 뒤에는 몰아치며 타점을 올릴 해결사들이 있다. 그 순서가 올시즌 라인업의 핵심이다.
이범호 감독은 나성범을 4번 타자로 두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 판단하는 듯 보인다. 나성범-위즈덤-최형우 순으로 4~6번 타순을 꾸리는 것이 이상적이라 보고 있다. 지난 시즌 전 계획했던 것과 일치한다. 나성범이 찬스를 잘 만드는 스타일이라면 최형우는 그 찬스를 잘 해결하는 스타일이다. 핵심타자 김도영 뒤, 그리고 새 외국인 타자 위즈덤 앞 뒤에서 득점 행진을 완성시켜줄 라인업이다. 그 뒤에는 빼어난 타자 김선빈이 받쳐주고 김태군, 이우성으로 이어지는 것이 KIA가 꿈꿔온 ‘드림 라인업’의 구도다.

KIA 나성범과 최형우. KIA 타이거즈 제공
열쇠는 새 타자 위즈덤이 쥐고 있다. 지난해 KIA는 상위타선과 중심타선의 핵심이 되는 타자 둘의 부진과 부상으로 이 라인업을 쓰지 못했다. 더불어 소크라테스가 개막 후 한 달 이상 심각한 부진을 겪었다. 당시 KIA는 외국인 타자 교체 여부를 고민하며 매일 고심해서 라인업을 짰다.
소크라테스가 가고 새로 온 위즈덤은 다른 유형의 타자다. 홈런 능력이 뛰어난 거포형이다. 그야말로 찬스에서 해결사 역할을 기대한다. 찬스 만드는 능력이 좋은 김도영과 나성범 뒤, 그리고 해결사 유형의 최형우 앞이 위즈덤에게 이상적인 타순이라고 보는 이유다. 물론 위즈덤이 잘 칠 때 얘기다. 위즈덤이 좋지 않으면 타순은 6번, 7번까지도 밀린 채 시작할 수 있다.
이범호 감독은 “위즈덤이 잘 쳐주면 이 순서대로 해볼 수 있다. 아주 많이도 아니고 타율 0.270 언저리만 칠 수 있으면 5번 타순이 좋다고 본다”며 “적응할 시간은 충분히 줘야겠다 생각하고 있다. 미국에서도 삼진 많았던 이유를 물으니 조금 못하면 마이너리그에 가야 하는 상황에 조급했다고 얘길 한다. 여기서는 급해지지 않게 만들어주려 한다”고 말했다.

KIA 패트릭 위즈덤. KIA 타이거즈 제공
일단 위즈덤은 좋은 느낌을 보여줬다. 캠프 연습경기에서도 기록을 떠나 강력한 파워와 함께 질은 좋은 타구를 만들어내 기대감을 높였다. 자세하게 목표를 밝히길 꺼려하는 일반적인 외국인선수들과 달리 “내 목표는 100타점”이라고 콕 집어 강조하기도 했다. 이범호 감독은 “홈런도 중요하지만 타점이 중요하다는 좋은 생각을 갖고 있다. 괜찮을 것 같다”고 말했다.
KIA는 8일 부산에서 롯데와 시범경기를 시작한다. 22일 NC와 치르게 될 개막전 라인업을 시범경기 10경기를 통해 결정할 계획이다. 위즈덤의 컨디션이 핵심이다.
일단 시범경기 첫 경기에서는 이 꿈의 라인업이 등장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나성범을 비롯한 고참 타자들도 스프링캠프 실전은 쉬고 시범경기에서부터 출전하기로 계획하고 훈련해왔다. 이범호 감독은 “시범경기 첫 경기에서 선수들이 전부 출전할 수 있다고 하면 타순을 그렇게 짜볼까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KIA는 지난해 김도영의 폭발력이 기점이 되면서 타자들이 하나둘 일어나 시즌을 거듭할수록 타선의 괴력을 자랑했다. 줄부상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인 공격력으로 정규시즌 1위를 차지했다. 올해도 그 정도의 파괴력을 보여야 챔피언의 자리를 지킬 수 있다는 각오로 최상의 라인업을 준비한다. 이 꿈의 라인업이 실현된다면 KIA 타선은 훨씬 공포스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