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투 경질에 카사스 위기까지, 늘어난 월드컵 티켓에 아시아 축구 감독 파리 목숨…홍명보, 언제까지 안전할까

입력 : 2025.03.27 15:09 수정 : 2025.03.27 15:12
25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 B조 8차전 대한민국과 요르단의 경기. 홍명보 감독이 경기를 지켜보다 생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25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 B조 8차전 대한민국과 요르단의 경기. 홍명보 감독이 경기를 지켜보다 생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파울루 벤투 감독이 극적인 승리를 거둔 지 8시간 만에 아랍에미리트(UAE) 축구협회로부터 전격 경질됐다.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한국을 16강으로 이끌었던 감독이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에서 북한을 2-1로 이긴 26일 해임 통보를 받았다. 불과 3년 전 한국 축구의 영웅이었던 인물이 A조 3위라는 나쁘지 않은 성적에도 경질당한 사실은 아시아 축구계 지도자들의 위태로운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런 소식에 많은 한국 축구 팬들은 “벤버지 돌아와요”라는 반응을 보이며 그를 그리워하고 있다. 홍명보 감독이 계속 지금처럼 안 좋은 경기력을 보여준다면 그의 경질을 원하는 팬들의 목소리는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2026 북중미 월드컵부터 아시아에 배정된 본선 티켓이 8.5장으로 확대됐음에도, 각국 축구협회들의 감독 교체 결정은 오히려 더 과감해지고 있다. 안정적 성적보다 협회와의 관계, 팬 여론, 단기적 부진까지 모두 경질 사유가 된 시대다. 한국과 인연 있는 감독들의 줄줄이 퇴진이 이런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헤수스 카사스 이라크 축구 대표팀 감독. 아시아축구연맹 홈페이지 캡처

헤수스 카사스 이라크 축구 대표팀 감독. 아시아축구연맹 홈페이지 캡처

같은 날, 한국 대표팀 감독 최종 후보였던 헤수스 카사스 감독도 이라크에서 팔레스타인에 역전패를 당한 후 경질 발표만 남겨둔 상황이다. 앞서 신태용 감독 역시 인도네시아에서 여러 성과에도 불구하고 미쓰비시컵 조별리그 탈락만으로 경질됐다.

벤투 경질의 이면, 성적보다 중요해진 ‘관계’

벤투 감독은 UAE를 A조 3위(승점 13점)로 이끌며 플레이오프 진출권은 확보했다. 하지만 2위 우즈베키스탄(승점 17점)과의 격차가 벌어지며 자력 본선행 희망이 사라지자 경질됐다. 현지 매체들은 “벤투 감독의 고집이 축구협회와 불화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아시안컵에서 16강 탈락과 걸프컵에서 조별리그 탈락(2무 1패) 등이 부정적 평가를 받았다.

파울루 벤투 감독(오른쪽 네번째)이 2022년 12월 6일 카타르 도하 스타디움에서 열린 브라질과 2022 카타르 월드컵 16강전에서 패한 뒤 선수들을 격려하고 있다. 도하|연합뉴스

파울루 벤투 감독(오른쪽 네번째)이 2022년 12월 6일 카타르 도하 스타디움에서 열린 브라질과 2022 카타르 월드컵 16강전에서 패한 뒤 선수들을 격려하고 있다. 도하|연합뉴스

벤투 경질 배경에는 더 복잡한 사정이 있다. 그는 UAE에서도 자신만의 철학을 고수했는데, 협회가 원하는 인기 선수 기용 등에 소극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UAE의 손흥민이라 불리는 알리 마브쿠트(알자지라 클럽) 등 베테랑 선수 기용을 두고 협회와 마찰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카사스 감독도 이라크를 한국과 같은 B조에서 3위(승점 12점)로 이끌고 있었지만, 최하위 팔레스타인과의 경기에서 충격적인 역전패를 당하자 경질 순서를 밟고 있다. 이라크 언론에 따르면 카사스 감독은 34경기에서 65명의 선수를 기용하고 선발 라인업을 161번이나 교체하는 등 일관성 없는 운영으로 비판받았다.

월드컵 문턱 낮아졌지만 오히려 높아진 기대치

지역 예선 기간부터 감독 교체가 잦아진 데는 여러 배경이 있다. 먼저 월드컵 본선 진출이 이전보다 ‘쉬워졌다’는 인식이 각국 축구협회의 기대치를 높였다. 과거 아시아에 4.5장 정도 배정될 때에는 조 3위만 해도 선전으로 평가받았지만, 지금은 본선 직행이 가능한 1·2위를 향한 경쟁이 치열해졌다.

두 번째로 소셜미디어의 발달로 팬들의 여론이 축구협회 결정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졌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신태용 감독 경질 후 파트릭 클라위베르트 체제에서의 부진을 지켜보며 ‘STYback’(신태용 복귀) 해시태그를 확산시키고 있다. 벤투 경질 후 일부 UAE 팬들은 “월드컵 진출 소식보다 이게(경질 소식) 더 기쁘다”는 댓글을 남기며 환호했다.

홍명보 감독, 정몽규 회장 두터운 신뢰 속 불안한 실적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 지난해 9월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 지난해 9월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홍명보 감독은 정몽규 축구협회장과 두터운 신뢰 관계를 바탕으로 상대적으로 안정적으로 지휘봉을 잡고 있다. 하지만 아시아 축구계 감독 교체 바람이 언제 한국까지 불어올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좋은 성과를 냈던 감독들도 한번 삐끗하면 자리를 잃는 것이 현실이다.

홍 감독은 이미 전술적 역량 한계를 드러낸 데다 결과도 좋지 않다. B조에서 4승 4무(승점 16점)로 1위를 유지하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약한 팀들이 포진한 조에서 50%의 승률은 좋은 성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특히 최근 홈에서 치른 오만, 요르단과의 2연전에서 연속 무승부를 기록하며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경기 내용도 공수 밸런스가 무너지고, 선수 기용에 있어서도 쓰는 선수만 쓴다는 비판을 받는다.

정몽규 협회장은 월드컵 지역 예선 홈 2연전이 끝나고 난 뒤 소셜미디어를 통해 응원 온 팬들에게 감사 표시하면서도 “못내 아쉬운 결과”라고 아쉬움을 내비치기도 했다. 벤투와 카사스 등 한국과 인연 있는 감독들의 줄줄이 퇴진은 홍명보 감독에게도 무거운 경고음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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