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훈의 스포츠IN

위대한 맞수 없이는 위대한 챔피언도 없다

입력 : 2025.04.15 09:26 수정 : 2025.04.17 07:01
로리 매킬로이, 저스틴 로즈가 지난 14일 마스터스 연장전을 마친 뒤 축하와 격려를 나누고 있다. 게티이미지

로리 매킬로이, 저스틴 로즈가 지난 14일 마스터스 연장전을 마친 뒤 축하와 격려를 나누고 있다. 게티이미지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가 지난 14일 커리어 그랜드 슬램을 달성하는 마지막 퍼트를 앞둔 순간. 뒤편에는 그와 연장전을 벌인 저스틴 로즈(잉글랜드)가 있었다. 로즈는 파퍼트를 넣은 뒤 짧은 버디퍼트를 남긴 매킬로이를 지켜봤다. 매킬로이는 버디를 기록했고 곧바로 그린에 엎드려 감격했다. 엄청난 박수와 환호가 쏟아졌다. 로즈는 박수치지 않았다. 표정에는 ‘혹시나 실수’를 기대한 아쉬움도 역력했다. 잠시 후 그는 매킬로이에게 다가가 축하 인사를 건넸다.

마스터스에서 두 번째 연장전 패배. 3번째 준우승을 받아든 로즈는 공식인터뷰에서 한참 침묵하다 “아프다”라고 입을 뗀 뒤 “정말 훌륭한 골프를 쳤고 스스로 자랑스럽다. 우리는 역사 한 장면을 봤다. 골프 역사에서 정말 의미있는 날”이라고 말했다.

44세 로즈는 첫날 7언더파를 치고 3타차 선두로 출발해 2라운드까지 1타차 리드를 지켰다. 3라운드에서 3오버파로 주춤했지만 마지막날엔 7타 앞선 매킬로이와 타이를 이뤘다. 로즈가 있었기에 매킬로이의 그랜드 슬램은 더욱 극적이었다.

지난 8일 프로배구 V리그 여자부 챔피언결정전 5차전에서 준우승한 정관장 선수들이 흥국생명 김연경을 응원하는 현수막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8일 프로배구 V리그 여자부 챔피언결정전 5차전에서 준우승한 정관장 선수들이 흥국생명 김연경을 응원하는 현수막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얼마 전 끝난 국내 여자배구 챔피언 결정전. 흥국생명이 정관장을 3승2패로 꺾고 챔피언이 됐다. 2연승 후 2연패, 마지막 5차전에서 풀세트 접전 끝 승리. 흥국생명, 슈퍼스타 김연경 모두에게 완벽한 피날레였다. 역사에 남을 명승부가 연출된 데는 정관장이 기여했다. 매경기 사력을 다한 것도 돋보였지만 5차전 직후 김연경 은퇴를 축하하는 플래카드 앞에서 준우승 사진을 찍은 것이 훨씬 큰 감동이었다. 메가가 보여준 경기력은 체육관을 달궜고 경기 후 밝은 표정은 체육관을 밝혔다.

베테랑 골퍼 필 미켈슨은 메이저대회에서 12차례 준우승하면서 경쟁자로서, 동업자로서 타이거 우즈의 대업을 지켜봤다. 콜린 몽고메리, 리 웨스트우드, 리키 파울러 등도 메이저대회 우승 없이 준우승만하며 챔피언을 압박한 데 만족했다.

2022년 9월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의 은퇴 경기를 지켜본 평생 라이벌 라파엘 나달은 “우리는 함께 많은 중요한 순간을 공유했다. 코트 안팎에서의 경쟁은 우리를 더 나은 선수로 만들었다. 로저와의 경쟁이 없었다면, 내 업적도 지금과 같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페더러 역시 “나달과 대결은 내게 큰 동기가 됐고 그는 나를 더 나은 선수로 만들어줬다”고 화답했다.

평생 라이벌 로저 페더러, 라파엘 나달이 2022년 9월 팀 레이버컵 경기를 마친 뒤 딴 곳을 바라보며 감정을 드러내고 있다. 게티이미지

평생 라이벌 로저 페더러, 라파엘 나달이 2022년 9월 팀 레이버컵 경기를 마친 뒤 딴 곳을 바라보며 감정을 드러내고 있다. 게티이미지

2008년 윔블던 결승전에서 나달은 5세트 접전 끝에 페더러를 꺾고 윔블던에서 처음으로 우승했다. 지금도 그 경기는 테니스 역사상 최고 경기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2012년 호주 오픈 결승에서는 노박 조코비치가 5시간 53분 경기 끝에 나달을 꺾고 정상에 올랐다. 그 경기는 그랜드슬램 결승 최장 시간 경기다. 2001년 윔블던 남자 단식 결승에서 고란 이바니세비치는 패트릭 래프터를 꺾은 뒤 “위대한 승리는 위대한 상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스포츠는 원천적으로, 태생적으로 독점이 불가능한 분야다. 동료가 있어야 팀을 이룰 수 있다. 상대가 있어야 경기할 수 있다. 팀들이 많아야 대회도, 리그도 할 수 있다. 스포츠에서 ‘맞수’는 경쟁자인 동시에 동업자다.

로저 페더러가 2017년 호주 오픈에서 우승했고 준우승한 라파엘 나달이 그를 바라보고 있다. 게티이미지

로저 페더러가 2017년 호주 오픈에서 우승했고 준우승한 라파엘 나달이 그를 바라보고 있다. 게티이미지

인간은 자신을 극복하면서 초인이 돼야한다고 주장한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적이 성공해야 우리도 성공할 수 있다. 벗이 될 수도 있고 적도 될 수 있어야 진정한 벗이다. 깨우친 인간이라면 자신의 적을 사랑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벗을 미워할 수도 있어야 한다.”

이게 바로 스포츠맨십이다. 많은 위대한 챔피언들을 낳은 더 많은 위대한 경쟁자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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